베놈: 라스트 댄스, 괴물과 인간의 이별법
하루가 저무는 저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영화 티켓 한 장이 손끝에 걸렸다.
2024년 10월. ‘베놈: 라스트 댄스’.
그날 관람을 마치고 극장 조명을 등지고 나오는 길,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던 기억이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 그 끝을 함께한 여운이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베놈: 라스트 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에디 브록과 베놈. 함께였기에 버텨냈던 시간들이 이제 도망이라는 형태로 흘러간다. 그들을 쫓는 존재는 하나가 아니다. 심비오트의 창조주, ‘널’이 고향에서부터 지구로 향하며 모든 위협의 중심이 된다.
영화는 멕시코의 한적한 골목에서 시작된다.
전작의 사건으로 도망자가 된 에디는 진실을 쫓아 그곳으로 향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땀에 젖은 셔츠, 흐트러진 머리, 베놈의 투덜거림까지.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지던 순간, 한 술집 장면이 등장한다.
익숙한 유쾌함.
베놈은 여전히 말이 많고, 어딘가 모자란데 귀엽다. 투견장에서 깡패들과 충돌하는 장면에선 그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파괴적이고, 정직하다.
중반부터 영화는 속도를 높인다.
제노페이지라 불리는 심비오트 병기들이 본격적으로 추격을 시작한다. 51구역은 미지의 존재를 통제하려 개입하고, 그 사이에서 베놈과 에디는 우연히 외계 생명체를 찾아 지구를 여행하던 ‘마틴 문 가족’과 얽힌다.
갑작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이야기 흐름이지만, 낯설지는 않다. 혼돈은 언제나 베놈 시리즈의 일부였으니까.
한참을 달리다 만난 첸 아주머니.
낯익은 미소, 따뜻한 눈빛.
그리고 놀랍게도, 베놈은 첸과 춤을 춘다. 어색하지만 정성스러운 몸짓. 관객들은 웃었고, 나는 잠시 조용해졌다. 그 장면은 뜬금없다고 하기엔 너무 인간적이었다. 마치 작별을 준비하는 방식 같았다.
결국, 마지막은 희생이었다.
베놈은 에디를 지키기 위해 제노페이지들과 함께 사라진다. 화려한 결투나 영웅의 승리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었다.
남겨진 에디는 자유의 여신상 앞에 선다. 도시의 불빛이 멀리서 흔들릴 때, 그는 말한다.
“기억할 거야.”
관람을 마친 그날, 극장 로비에서 들려온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베놈판 어벤져스 어셈블. 팀플레이가 멋졌어요.”
“창조주의 위협이라니, 스케일이 확 커져서 시원했어요.”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감정선이 살아 있어서 좋았죠.”
기대 없이 본 영화였다.
아무도 이 시리즈의 끝이 감정적일 거라고는 예측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더 큰 여운을 남겼다.
액션은 충분했고, 유머도 그대로였지만, 마지막까지 ‘베놈’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잊지 않았다.
그는 괴물이고, 친구였으며, 때로는 또 다른 ‘나’였다.
에디와 베놈의 관계는 단순한 공생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낸 시간, 함께 싸운 흔적,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했던 기억. 그것이 베놈의 정체성이었다.
지금 다시 그 티켓을 바라본다.
뒷면에 적힌 상영 시간, 관람 좌석 번호,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흔적.
모든 게 멈춰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마지막 춤이 흐르고 있다.
에디는 혼자였지만, 완전히 외롭진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알았다.
누군가를 끝까지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진짜 마지막 춤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