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기록 세운 한국 애니메이션의 도전

10년의 기다림 끝에 탄생한 스크린 속 여정

by 이슈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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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앞을 지나가다 유난히 긴 줄을 보았다. 팝콘 냄새가 스며드는 로비 한편, 매표기 화면에는 ‘킹 오브 킹스’라는 제목이 가장 위에 떠 있었다. 개봉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그것도 성경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이토록 많은 관객의 발걸음을 끌어모으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장성호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가 원래 실사 영화의 특수효과 전문가였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화려한 CG 뒤에 숨은 손길로만 기억될 줄 알았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생각을 품고 있었다. 미국 기독교 콘텐츠 시장을 지켜보며, 종교라는 틀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리라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사 위주의 경력, 낯선 장르, 그리고 제작비를 모으기 위한 시간.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그림을 그리듯 장면을 구상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킹 오브 킹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가지만, 그 속에는 찰스 디킨스와 막내아들 월터의 여행 같은 온기가 배어 있다. 이야기의 축은 종교보다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가깝다. 믿음이 있든 없든, 누구나 마음 한편에서 공감할 수 있는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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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빙에는 한국과 미국의 배우들이 함께했다. 케네스 브래너, 오스카 아이삭, 우마 서먼, 그리고 이병헌까지. 제이미 토머슨이라는 베테랑 캐스팅 디렉터의 연결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케네스 브래너가 대본 속 한 줄을 두고 “내가 직접 써도 이렇게 쓰기 어렵다”고 했다는 일화는, 제작진에게도 배우들에게도 이 작품이 단순한 참여 이상의 의미였음을 보여준다.


이병헌이 불교 신자임에도 목소리를 맡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고, 부자 관계 회복이라는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선택이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영화는 완성됐다. 각본과 연출, 성우 캐스팅까지 치밀하게 설계된 결과물은 개봉과 함께 국내 박스오피스 예매율 1위를 찍었다.


흥행은 바다를 건너 북미에서도 이어졌다. 시네마스코어 A+ 등급. 1979년 이후 단 128편만이 받은 최고 점수다. 로튼토마토 관객 지수 97%라는 숫자는, 그저 종교적인 호소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평이 아니다. 관객들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균형 있게 풀어낸 서사에 반응했다. 인간적인 고뇌와 사랑, 그리고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는 메시지가 그 속에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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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은 ‘기생충’을 넘어섰다. ‘넛잡: 땅콩 도둑들’ 이후 처음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북미 상위권에 올랐다. 제작비는 2500만 달러, 북미 기준으로 저예산에 속한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기적과 같은 장면들이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물 위를 걷는 발자국, 하늘빛이 번져드는 예루살렘의 거리, 제자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 속 표정까지.


‘킹 오브 킹스’는 종교 애니메이션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섰다. 부드럽지만 힘 있는 이야기, 치밀하게 다듬어진 시각효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되묻는 시선이 그 중심에 있다. 장성호 감독은 이번 작업으로 애니메이션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다. 다음 작품도 글로벌 관객을 향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스크린 속 예수는 그저 종교적 인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친구였으며, 이해받고 싶은 한 인간이었다. 아마 그래서 이 영화는, 믿음의 유무를 넘어 더 오래, 더 멀리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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