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익숙한 이야기로 만든 신선한 경험
공연장 앞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수천 개의 응원봉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한 점에 모인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빛 뒤, 무대에서 내려온 순간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면 어떨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바로 그 상상을 영화로 옮겨놓는다.
화면 속 주인공 루미, 미라, 조이는 전 세계를 누비는 케이팝 슈퍼스타다. 팬미팅과 콘서트, 광고 촬영으로 꽉 찬 일정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다. 음악 활동이 없을 때면 이들은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악귀를 사냥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팬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야기만 들으면 ‘아이돌이 퇴마를 한다’는 설정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경계에서 한 발도 비틀거리지 않는다.
전개는 단순하다. 위기 속에서 숨겨진 힘이 깨어나고,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 수많은 히어로물에서 반복되던 흐름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뻔함을 무기로 쓴다. 어렵게 세계관을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은 바로 이야기에 빠져든다. 대신 카메라가 잡아내는 장면 하나하나, 음악과 액션의 박자, 의상과 색감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영화가 미국의 소니 픽처스 제작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외국 자본이 만든 K-팝 판타지임에도 화면 곳곳에 한국적 감각이 숨 쉬고 있다.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전투복, 굿판을 떠올리게 하는 퇴마 의식,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귀신 서사까지. 전통적인 소재가 낯선 시청자에게는 이국적이고, 한국 관객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세련되게 다가온다. 동양의 미학과 서양의 제작 방식이 어색함 없이 어우러진다.
화려한 무대 장면과 액션 신이 맞물릴 때 영화는 가장 빛난다. 조명의 반짝임과 북소리의 울림, 폭발하듯 터지는 안무가 전투 장면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케이팝 특유의 군무가 악귀와의 대치에서 무기처럼 쓰일 때, 장르의 경계는 무너진다. 관객은 눈으로 음악을 보고, 귀로 액션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장르 혼합의 틀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익숙한 이야기 속에 비범한 시청각 경험을 덧입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케이팝이라는 세계 공용어가 있다. 무대 위 아이돌이 가진 빛과, 무대 뒤 어둠 속에서 맞서는 용기가 겹쳐질 때,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감각을 남긴다.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머릿속에는 여전히 무대 조명이 깜빡인다. 케이팝의 비트와 함께, 어쩌면 어디선가 또다시 악귀를 사냥하고 있을 세 사람의 그림자가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