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함마저 웃음으로 만든 ‘파일럿’
넷플릭스를 켜고, 지인들과 간단히 안주를 놓고 앉았다. 한여름 저녁, 시원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추천 목록에 뜬 영화 ‘파일럿’을 아무 생각 없이 재생했다. 제목부터 익숙하고 단순해서, 깊은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영화 속 한정우는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는다. 스타 파일럿에서 추락한 그는, 여동생의 신분으로 변장해 다시 하늘을 향한다. 여장한 조정석이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는 단번에 변한다. 목소리 톤, 표정, 손끝의 제스처까지 빈틈없이 캐릭터에 맞춰졌다. 그가 ‘한정미’라는 이름으로 웃음을 터뜨릴 때, 화면 속 세세한 움직임에 시선이 계속 붙잡혔다.
함께 보던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소소한 농담과 과장된 상황극이 적당히 이어졌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불이 켜진 순간, 머릿속에 남은 건 오로지 조정석의 표정과 몸짓뿐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변화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지고 있었다.
영화는 강한 주제의식이나 복잡한 서사 대신, 순간적인 웃음을 선택했다. 젠더를 건드리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그 의미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파일럿이라는 직업의 무게보다, 웃음을 위한 설정이 앞섰다. 그 과정에서 과장과 비현실성은 자연스럽게 섞였다. 물론 가볍게 즐기는 코미디라면 충분히 허용될 수 있는 범위였지만, 감정의 깊이나 몰입은 그만큼 얇아졌다.
그래도 배우의 힘은 분명했다. 허술한 전개마저 그의 손끝에서 다른 질감으로 변했다. 장면마다 리듬이 생겼고, 대사의 뉘앙스는 상황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영화는 완성도보다 에너지로, 메시지보다 웃음으로 기억됐다.
‘파일럿’은 무겁지 않다. 보고 나면 오래 남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작은 비행처럼 가볍게 떠오르게 만든다. 웃고 싶은 날, 큰 기대 없이 틀었다가 배우 한 명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비행이 길지는 않더라도, 창문 바깥으로 스치는 구름 한 조각 정도는 건져 올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