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와 재정비, 드라마 ‘내부자들’이 남긴 질문
늦여름 저녁 뉴스를 보다가 송강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드라마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었다. 익숙한 배우의 이름이 들리자 잠시 손에 쥔 컵을 내려놓게 된다. 그가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무게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촬영 연기와 일정이 맞물리며 결국 하차가 결정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드라마 ‘내부자들’은 처음부터 영화의 그림자와 함께 출발하는 작품이었다. 2015년 개봉했던 영화는 정치, 언론, 조폭이 얽힌 거대한 비자금 스캔들을 그렸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끝없이 얽히고 흩어지며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같은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영화는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사회 풍자의 기록처럼 남았다. 극장 안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드라마는 영화보다 앞선 시점을 다룬다. 원작 속 인물들이 처음 어떻게 마주하게 되었는지, 그 사건의 뿌리를 파고든다. 이강희, 장필우, 안상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서늘해지는 구도가 다시 짜이는 셈이다. 이야기는 여전히 무겁고, 사회 구조의 빈틈을 정면으로 건드릴 예정이다. 드라마가 12부작으로 제작 방향을 바꾼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판단, 그리고 세계관의 빈틈을 메우려는 의도가 스며 있다.
송강호는 원래 언론인 이강희 역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영화에서 백윤식이 맡았던 인물이다. 그가 드라마에서 새로운 얼굴로 등장한다면 어떤 색이 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무엇보다 영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배우가 아니라, 처음으로 드라마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쏠렸다. 하지만 일정의 교차는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발을 뺐고, 제작사는 다시 새로운 배우를 찾고 있다.
연출은 모완일 감독이 맡는다. ‘부부의 세계’, ‘미스티’ 같은 작품에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짚어낸 연출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번에도 인물의 내면을 헤집어내며 서사의 밀도를 높일 수 있을지, 그 기대가 남아 있다. 이미 공개된 캐스팅 명단에는 예리, 이성민, 신승호, 수애, 구교환 등 묵직한 이름들이 적혀 있다. 조합만으로도 긴장감이 서려 있다.
영화 ‘내부자들’은 흥행과 평단의 평가를 동시에 거머쥔 작품이었다. 초판 편집본, 삭제 장면, 감독판 공개 같은 이야기가 따라붙으며 팬들의 관심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러닝타임 3시간이 넘는 감독판이 상영되었지만 평가의 무게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본편의 농축된 긴장감이 더 오래 회자되었다. 이런 기록은 드라마에겐 도전이자 부담이다. 이미 관객의 기억 속에 선명한 얼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병헌이 연기한 안상구, 조승우의 우장훈, 백윤식의 이강희. 세 인물이 빚어낸 긴장감은 하나의 교본처럼 남았다. 각자의 연기와 캐릭터가 절묘하게 맞물렸기에 가능한 조합이었다. 드라마는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무게에 갇히지 않고, 세계관을 새로 짜고 긴장을 새롭게 조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의 아류로 머물 수밖에 없다.
제작사는 이번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두고 각본을 다시 다듬고 전체 구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하나의 큰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을 다시 배열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긴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발걸음을 늦추는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내부자들’이라는 이름은 이미 한국 사회의 특정한 풍경과 겹쳐진다. 권력과 자본, 언론과 폭력이 서로의 그림자를 키워가는 장면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얼굴들이 드러난다. 드라마가 어떤 방식으로 그 풍경을 다시 그릴지, 기대와 의문이 동시에 남는다.
송강호의 하차는 한 축을 무너뜨린 사건이지만, 동시에 드라마가 새롭게 길을 찾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배우가 합류하느냐보다, 작품이 어떤 시선으로 지금의 현실을 비추느냐다.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도 결국 우리 사회의 거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