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전의 몸에 깃든 남자, 그리고 철종
어느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거실에 앉아 넋 놓고 TV 채널을 돌리다가 익숙한 얼굴과 대사가 귀를 붙잡았다. 이미 종영된 지 몇 해가 지난 드라마였다. 그런데도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했고 그 유쾌함과 기묘한 긴장감은 다시 봐도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철인왕후’ 속 조선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땐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중전의 몸에 현대 셰프의 영혼이 들어가다니 궁중이라는 무게감 있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이 기묘한 설정은 웃기고도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빙의'라는 설정은 낯설지 않았지만 그걸 사극에 가져다 붙인 발상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장봉환은 청와대 요리사로 일하다가 어느 날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 뒤 조선시대 중전 김소용의 몸속에서 눈을 뜬다. 갑작스레 궁중에 떨어진 그는 호칭부터 예절까지 모든 것이 낯설다. 중전이지만 전혀 중전 같지 않은 그의 언행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동시에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이질적인 존재가 조선의 틀 안에서 겪는 생존기는 매 순간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이야기의 뼈대는 분명 로맨스다. 그러나 흔한 궁중 로맨스와는 결이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조심스럽게 견제하는 철종과 김소용. ‘노타치 로맨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 관계는 육체는 가깝지만 마음은 먼 거리에서 천천히 좁혀진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조심스러운 거리감이다. 그들 사이에는 오해가 있고, 오해 속에는 기대가 숨어 있다. 결국 그 기대는 신뢰로 이어지고 신뢰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으로 피어난다.
중전이라는 자리. 그 화려하고 단단해 보이는 자리는 실은 고립과 침묵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김소용은 그곳에 자신을 걸었다. 어머니의 꿈, 아버지의 자부심, 가문의 기대까지 그러나 그 자리에 앉은 후 그는 깨닫는다. 아무것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그는 점점 세상과 자신에게 날을 세운다. 어쩌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 건 철종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왕이지만, 그 이면에는 냉철하고 단단한 의지가 숨어 있다. 그는 조선의 개혁을 위해 스스로 허수아비가 되기를 자처하고, 아무도 모르게 현실과 타협하며 판을 짠다.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속으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철종. 봉환은 처음 그를 가식적인 왕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중성 너머의 진심을 알아차리게 된다.
드라마의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물들은 철저히 현대적인 가치관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참고 견디지 않는다. 욕망하고, 계획하며, 행동한다. 주방장의 성별도 바뀌고, 중전과 후궁이 활을 쏘며 경쟁하는 장면도 나온다. 시대극이면서도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다.
‘철인왕후’의 방영은 순탄치 않았다. 첫 방송부터 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관심을 모았지만 곧 원작 작가의 과거 발언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실존 인물에 대한 희화화, 무속 신앙 묘사, ‘조선왕조실록’을 ‘찌라시’에 비유한 장면 등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후손들의 항의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도 있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4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17%를 넘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청자들은 그 논란을 감안하더라도 ‘재미있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드라마는 그 자체로 질문을 던졌다. 역사적 배경을 차용한 픽션의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웃기 위해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런 무거운 질문보다 이 드라마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인물들 사이의 감정이다. 철종과 김소용은 끊임없이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끝내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 모습이 어쩐지 현실의 부부, 연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다정하지 않아도,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사랑한 게 아닐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철인왕후’는 사극이기 이전에 감정의 드라마였다. 고전적 형식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낸 실험.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외로움과 두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손 내미는 용기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말장난 같았던 '노타치 로맨스'는 결국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되는 방식이었다.
다시 화면 속 조선으로 돌아간다. 붉은 궁궐, 바람에 흔들리는 비녀, 단단하게 눈빛을 주고받던 두 사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왠지 마음은 거기서 조금 머물다 오고 싶어진다.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무언가를 잃고 있진 않지만, 문득 문득 그런 감정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시 이 드라마를 꺼내 볼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이해받고 싶어서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는 김소용이나 철종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