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에서 ‘부고니아’까지, 다시 열린 이야기
베니스의 수상 택시가 잔잔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화면 속에서 배우들이 웃고, 손을 흔들며,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과 들뜸을 감추지 못하던 그 순간. 그것이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 ‘부고니아’가 세상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흡사 바람이 바뀌는 지점처럼, 영화제의 공기는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영화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 2003년 한국에서 개봉했던 ‘지구를 지켜라!’. 외계인이 지구를 노린다고 믿었던 한 청년의 망상과 집착, 그 속에서 뒤틀리듯 드러났던 세계의 민낯. 란티모스는 그 이야기를 다시 불러와 자신만의 색을 입혔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경계, 불안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흐름. 그의 영화는 늘 익숙한 땅을 밟으면서도 낯선 길로 데려간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쏟아진 반응은 뜨거웠다. 해외 언론은 서로 다른 언어로 비슷한 열광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빛과 색채의 장관을 말했고, 또 다른 이는 블랙 유머와 충격적인 결말을 언급했다. 혹자는 장르의 경계를 흔드는 작품이라 했고, 어떤 평론가는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 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수면 위 반짝이는 빛처럼 흩어져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듯했다.
그 풍경의 뒤에는 한국 영화의 그림자가 있었다. CJ ENM이 원작 ‘지구를 지켜라!’에 이어 이번에도 기획과 제작, 배급까지 맡았다. 단순히 과거를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무대를 향한 발걸음을 이어간 셈이다. ‘패스트 라이브즈’ 이후 또 한 번 세계로 건네는 목소리. 그것은 한국 영화가 가진 끈기이자 실험에 가까운 시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제 현장의 표정들이었다. 수상 택시 위에서 웃음을 터뜨리던 배우들, 무대 뒤에서 흘리던 긴장된 눈빛, 세계의 이목이 모인 자리에 서 있다는 감각. 그 모든 순간은 단순한 홍보용 장면을 넘어, 한 편의 영화가 태어나 관객에게 도달하기 직전의 숨결을 담아냈다.
‘부고니아’는 이제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베니스에서의 박수와 환호가 곧 우리 극장에도 울려 퍼질까. 혹은 낯선 리듬과 낯선 웃음이 우리를 불편하게도, 동시에 매혹적으로 만들까. 란티모스의 영화는 언제나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오래 남는다.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가 지나간 자리에서 남겨진 공기를 오래 곱씹게 된다. 택시가 물살을 가르던 장면처럼, 세계 영화제의 물결 속에서 한국의 기억과 그리스 감독의 상상력이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 그것이 ‘부고니아’가 남긴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