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질주 ‘F1 더 무비’
주말 저녁, 오래된 극장의 불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로비 한가운데 세워진 포스터 속 브래드 피트는 눈을 곧게 세운 채 서킷을 응시하고 있었다. ‘F1 더 무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나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날의 나는 단순히 보고 싶다는 충동 하나로 티켓을 끊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상영관. 예고편이 끝나고, 화면이 밝아지자 곧장 엔진음이 터져 나왔다. 벽과 의자, 바닥마저 울리는 진동은 영화라기보다 실제 경기장에 앉아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화면 속 차들이 미끄러지듯 곡선을 파고들 때, 관객의 호흡은 어느새 브래드 피트의 가속 페달에 맞춰 빨라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정상에서 추락한 드라이버가 다시 핸들을 잡고, 패배와 갈등 끝에 부활을 꿈꾸는 이야기. 뻔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질주는 그 단순함마저 압도적으로 빛나게 만들었다. 레이싱의 체감이 영화의 모든 결을 바꿔 놓은 것이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이전에 전투기 속도로 관객을 휘어잡더니, 이번에는 서킷으로 눈을 돌렸다. 카메라는 드라이버의 시야를 그대로 빌려왔고, 그 순간만큼은 관객 모두가 ‘나’라는 이름의 드라이버가 된다. 화면은 아찔했지만, 그 속도는 이상하게 편안했다. 마치 오랜만에 맞는 여름 소나기처럼.
관객들이 남긴 후기를 떠올려 본다. “이건 꼭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라는 말. 실제로 그렇다. 작은 화면 속에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무게가 있다. 바퀴가 도로를 스치며 튀겨내는 작은 조각들, 엔진이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금속성 울림, 그리고 무모할 만큼 달려드는 인간의 눈빛. 그것들은 집에서의 편안한 소파 위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세월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젊은 날의 빛은 조금 옅어졌지만, 대신 단단함이 남았다. 그의 주름은 상처 같기도, 훈장 같기도 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얼굴 자체가 이야기의 설득력이 된다. ‘늙어도 브래드 피트는 브래드 피트다’라는 말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그저 사실이었다.
흥행 기록을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붙잡았는지 알 수 있다. 6억 달러라는 숫자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극장이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뜨거운 여름, 스크린 앞에 모여 함께 웃고, 놀라고, 숨을 고르는 그 순간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극장을 찾는 이유일지 모른다.
물론 이야기의 구성은 허술한 곳도 있었다. 갈등이 풀리는 방식이 단조롭고, 경기 장면의 배치가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화면을 지배하는 속도와 사운드 앞에서 그 불만은 곧 묻혔다. 낭만과 멋을 아는 ‘올드스쿨 형님들’의 기운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귀 속에 여전히 엔진음이 맴돌았다. 극장의 출구를 나서며, 나는 다시 도심의 천천한 속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딘가 가슴은 여전히 시속 300킬로미터의 세계를 달리고 있었다.
그날의 밤, 브래드 피트와 함께 달렸던 서킷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 잔향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잔향만으로도 다시 극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