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앞에서 떠오른 기억 한 조각
저녁 뉴스를 보다가 ‘대홍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멈춰 선 화면 속에는 물에 잠긴 초고층 아파트가 어둑한 빛에 잠겨 있었다. 문득 오래전 여름날, 장마철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로 가득 차던 순간이 떠올랐다. 낯선 공포가 현실처럼 밀려왔던 그때의 기억이 겹쳐졌다.
영화 ‘대홍수’는 인류의 마지막 날을 상상한다. 한순간에 모든 게 잠겨버린 세계.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티저 포스터 속 서로를 꼭 끌어안은 어른과 아이의 모습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끝이 다가올 때, 인간은 결국 누군가의 곁에 서 있으려는 존재라는 것을.
김병우 감독은 “이 영화는 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는 장르보다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는 듯했다. 거대한 홍수는 배경일 뿐, 결국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 비출 것이다. 김다미와 박해수는 그 얼굴의 한쪽을 채운다. 벼랑 끝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가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다는 소식은 또 다른 설렘을 불러온다. 붉은 조명이 켜진 영화의전당 광장, 수많은 발걸음 사이로 새로운 이야기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자리. 그곳에선 언제나 영화가 단순한 스크린 속 이미지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공기를 흔드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넷플릭스는 이번 영화제에서 아홉 편의 작품을 준비했다. ‘굿뉴스’는 납치된 여객기를 착륙시키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당신이 죽였다’는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잔혹한 게임을 그린다. 그 사이사이 일본과 대만, 유럽 감독들의 작품들이 이어진다. 거대한 이야기들이 각자의 색을 품고 모여드는 풍경.
나는 늘 부산국제영화제를 떠올리면 바닷바람이 스치는 밤이 함께 떠오른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흩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파편, 관객들의 얼굴에 남은 여운. 이번엔 ‘대홍수’가 그 한가운데에 서 있을 것이다.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를 찾는다. 그것이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는 마지막 불빛이 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