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신작 '얼굴'
저녁 뉴스를 보다가 낯익은 이름이 화면에 떴다. 연상호 감독.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라 잠시 멈춰 서서 화면을 바라봤다. 새 영화 ‘얼굴’이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거의 한 달간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연승을 끊어낸 주인공이 연 감독의 작품이라니 조금은 반가웠다.
‘얼굴’은 화려한 장치가 없는 영화라고 했다. 제작비는 2억 원. 요즘 영화 한 편 예고편에만 들어가는 돈보다 적은 규모다. 그런데도 첫날 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다음 날도 그 기세를 이어갔고, 관객 평점은 8점대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네모난 화면 속 수치들을 바라보다 보니, 영화라는 것이 결국 돈의 무게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오래 움직인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이야기의 중심은 한 사람이다.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의 아들, 임동환. 그는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유골을 마주하게 되고, 그 죽음을 따라가며 진실을 찾아 나선다. 낯선 듯 익숙한 미스터리의 골격 위에 배우들의 얼굴이 포개진다.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이름만으로도 상상이 차오르는 배우들이다. 화려한 세트도 거대한 CG도 없이, 결국 이야기를 붙잡는 건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하다.
연상호 감독의 이름을 처음 각인시켰던 건 ‘부산행’이었다. 스크린 가득 몰려오는 좀비 떼 속에서 기묘하게 선명했던 건 기차 안 사람들의 감정이었다. 그때도 의심이 많았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과연 될까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 영화는 결국 천만을 넘겼고, 해외에서도 같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칸에서의 호응, 대만에서의 흥행, 그 모든 결과가 그의 커리어를 다른 궤도로 올려놓았다.
이번엔 정반대다. ‘부산행’이 100억짜리 블록버스터였다면, ‘얼굴’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숫자만큼의 예산으로 찍은 영화다. 오히려 이 작은 규모가 그의 도전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거대한 제작비가 없어도, 결국 감독이 붙잡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관객은 극장에 발을 들인다.
뉴스 화면은 곧 다른 소식으로 넘어갔지만, 마음은 잠시 머물렀다. 박스오피스 1위라는 타이틀보다도, 저예산 영화가 관객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반짝이는 기술보다 오래 남는 얼굴, 화려한 장치보다 단단한 이야기.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발걸음이 어떤 자국을 남길지, 그 길을 따라가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