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관의 피'
비 오는 밤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도로 위 가로등 불빛에 번지는 물웅덩이, 그 속을 누군가 달려가는 그림자. 영화〈경관의 피>는 바로 그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찰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균열과 모순을, 차갑고 젖은 공기 속에 풀어 놓는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황인호다. 그는 쓰러진 동료를 바라보며, 귀에 흉터가 있는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한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신입 형사 최민재는 청문감사실의 지시로 박강윤 반장의 곁에 잠입한다. 원칙만을 믿던 청년은 곧 낯선 세계를 마주한다.
박강윤은 화려했다. 경찰이라 믿기 어려운 집과 차, 손목 위의 시계까지. 그는 범죄자의 돈을 끌어와 수사비로 쓰고 있었다. 부패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치밀한 전략 같기도 했다. 민재는 그를 감시하면서도, 아버지와의 인연이라는 이야기에 흔들린다. 유품인 호루라기를 품에 안은 채, 그는 의심과 신뢰 사이를 오간다.
마약 조직, 사채업자, 숨은 거물들이 얽히며 사건은 점점 복잡해진다. 반장은 거래를 하는 듯하면서도 함정을 파고 있었다. 그 모순된 태도 속에서 민재는 점차 이해와 혼란을 동시에 느낀다.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를 선명하게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회색의 공간에서 인물들을 흔들어 놓는다.
결정적인 순간은 ‘연남회’라는 이름에서 시작된다. 과거 경찰 내부의 비밀 모임. 수사비를 모으던 후원금은 어느새 비자금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 안에 발을 담갔다. 민재의 아버지도 그 그림자에 휘말려 있었다. 결국 그 죽음은 의무가 아닌 구조적 모순의 결과였다.
박강윤은 끝내 체포된다. “내가 한 걸로 끝나겠지”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오래된 체념과, 어쩌면 후배를 지키려는 마지막 선택이 섞여 있었다. 민재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경찰 조직의 어두운 진실과 마주한다.
〈경관의 피〉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정의를 믿는 한 신입 형사가 현실에 부딪히며 흔들리는 이야기다. 관객은 민재와 함께 질문을 이어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경찰이라는 직업 뒤에 또 다른 얼굴은 없는지.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관객 수 68만여 명,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영화를 설명하기는 아쉽다. 이 작품은 끝까지 경계 위를 걷는다. 원칙과 타협 사이, 정의와 부패 사이, 인간과 직업 사이. 빗속에서 시작된 첫 장면처럼, 그 끝도 선명히 갈라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묘한 울림이 남는다. 어둡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 흔들리지만 결국 직시해야 하는 진실. 〈경관의 피〉는 그 무게를 조용히 건넨다. 관객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