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지옥도

배신과 욕망으로 물든 느와르, '아수라'

by 이슈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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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지하철 안, 창밖으로 어스름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고, 나는 괜히 눈을 감았다가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피와 절규로 얼룩진 장례식장, 총성과 비명이 뒤섞인 그 광경. 영화 ‘아수라’의 마지막이었다.


이 도시는 가상의 공간 ‘안남’이라 불리지만, 낯설지 않았다. 땅값과 권력,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게 변해갈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어서일까. 시장 박성배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 한도경은 말기 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정의를 저버린다. 안남은 도시의 이름일 뿐,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실의 그림자 같았다.


도경은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조금씩 무너졌다. 주머니 속에 들어온 돈은 아내의 병실을 지켰고, 동시에 그의 양심을 갉아먹었다. 그가 가진 경찰 배지는 더 이상 정의의 상징이 아니었다. 시장의 심부름꾼, 검사의 협박 대상, 그리고 결국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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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억에 남는 건, 후배 문선모였다. 처음엔 도경을 따르던 순진한 경찰이었는데, 권력의 단맛을 맛본 뒤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시장의 신임을 얻으려 했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형제 같던 두 사람이 칼끝을 겨누며 갈라서는 순간, 스크린 속 인물들의 비극이지만 왠지 모르게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영화의 후반부는 압도적인 폭력으로 채워졌다. 장례식장 난투극. 검찰, 조직폭력배, 경찰이 한데 뒤엉켜 싸우는 장면은 차라리 지옥에 가까웠다. 선악의 경계는 이미 사라지고, 오직 살아남으려는 몸부림만 남았다. 도경이 끝내 박성배와 맞붙는 장면에서, 나는 이 싸움조차 허망하다는 걸 느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고, 이제 남은 건 파멸뿐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설 때,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흔히 범죄 영화가 끝나면 해소감이나 정의의 승리를 기대하게 되지만, ‘아수라’는 그런 틀을 단호히 거부했다. 대신 관객의 마음에 찝찝한 잔여물을 남겼다. 그때는 많은 이들이 불편하다며 등을 돌렸고, 흥행 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불편함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결말을 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부패와 욕망이 더 힘을 갖는 경우가 많다. ‘아수라’는 그런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었다. 그래서 뒤늦게 재평가가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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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흔들리는 눈빛, 황정민의 압도적인 카리스마, 주지훈과 곽도원의 변주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캐릭터의 추악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결핍을 드러냈다. 김성수 감독은 그 모든 걸 억지로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차갑게 보여주었다.


나는 아직도 영화 속 한도경의 마지막 독백을 떠올리곤 한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 그것은 단순한 캐릭터의 탄식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그림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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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수라’는 흥행 성적과 별개로 오래 남을 작품이 되었다. 반짝 빛나는 성공은 얻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 피로 얼룩진 장면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욕망에 휘둘려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오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다시 그 얼굴들이 떠올랐다. 스크린 속 안남은 사라졌지만, 그 도시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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