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고 또 보고 싶어지는 판타지 드라마 4편

시간을 넘어 머문 드라마

by 이슈피커
1.jpg 사진=유튜브 'SBS Drama'

창밖으로 스치는 가을 바람에 문득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현실은 분명한데도, 마음은 자꾸만 다른 시공간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기도 하며,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일이 당연해진다. 그렇게 판타지는 어느새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오래도록 기억을 남겼다.


판타지라는 건 사실 멀리 있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평행세계가 열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펼쳐지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가장 선명히 남은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었다. 화려한 설정보다, 얽히고 부서지고 다시 이어지는 감정들이 내 기억을 붙잡았다.

2.jpg 사진=SBS 홈페이지

2016년,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를 처음 보던 날이 생각난다. 고려의 왕자들이 서 있는 장면은 낯설었지만, 그 안에 깃든 해수의 눈빛은 내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인과 부딪히고, 사랑하고,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초반에는 웃음이 많았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어둠이 깊어졌다. 마지막 회가 끝나던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허무와 여운이 남았다. 지금도 그 결말은 종종 회자된다.

3.jpg 사진=SBS 홈페이지

그보다 앞선 2013년, ‘별에서 온 그대’를 따라가던 겨울도 있었다. 외계인과 톱스타라니, 처음엔 다소 황당했지만 이내 몰입하게 되었다. 도민준이 가진 고독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천송이의 거침없는 활기와 부딪히며 만들어낸 장면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웃음과 설렘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이 드라마는 국경을 넘어 사랑받았고, 한류라는 말이 더 단단해지던 순간을 함께했다.

4.jpg 사진=SBS 홈페이지

2020년, ‘더 킹: 영원의 군주’가 방영될 때는 평행세계라는 단어가 자주 입에 올랐다. 한쪽에는 대한제국이 있고, 다른 쪽에는 대한민국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드나드는 그 설정은 복잡했지만, 동시에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색감과 웅장한 장면들은 마치 현실을 벗어나 또 다른 공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국내 반응은 엇갈렸으나, 해외에서는 많은 관심을 모으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5.jpg 사진=유튜브 'SBS 옛날 드라마 - 빽드'

2013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있었다. 법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더해졌다. 특이한 조합이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정의와 원칙, 사람 사이의 감정이 맞물린 극은 매회 긴장감을 높였다. 끝까지 탄탄하게 이어진 서사는 완성된 문장을 읽는 듯 매끄러웠다.


이렇게 다시 돌아보니, 네 작품은 모두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고려의 궁궐에서, 현대의 무대에서,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법정의 한가운데서.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결국 그 안에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 서는 이야기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 다시 꺼내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판타지는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을 더 깊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현실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상상 속에서야 가능한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끝내 남는 건 마음의 결이다.


전철이 멈추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이어폰을 빼자 소음이 몰려왔지만, 방금 전까지 머물던 장면들은 여전히 또렷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천천히 다시 살아났다. 그 순간, 판타지는 현실보다도 더 진하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웃음과 설렘이 필요한 밤 보기 좋은 드라마 다섯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