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울고, 또다시 웃게 되는 드라마의 힘
어느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다. 몸은 무겁고 생각은 복잡한데 이상하게도 눈은 웃음을 찾는다. 그럴 때 화면 속 인물들이 어설프게 부딪히다 결국 웃어버리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미소가 번진다. 현실에선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순간의 설렘. 그래서 나는 종종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속으로 숨어든다.
로맨스 코미디는 늘 특별하다. 진지한 듯하다가도 허무맹랑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눈물이 맺히려는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마치 지나치게 달지 않은 디저트처럼 끝내고 나면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쩌면 우리가 드라마 속 연인들을 바라보는 건 그들의 완벽한 사랑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겪는 해프닝과 우연, 사소한 말다툼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겨울, tvN에서 방영된 '사랑의 불시착'은 말 그대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품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떨어진 재벌가 여자가 특급 장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지켜내는 모습은 오히려 더 현실 같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풍경, 조연들의 유쾌한 활약, 그리고 묘하게 진지한 눈빛까지. 그 순간만큼은 시청자 모두가 그곳에 함께 불시착한 기분이었다.
반대로 현실적인 직장 이야기를 담은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오피스 로맨스의 정석처럼 다가왔다. 자기애가 넘치는 부회장과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켜온 비서. 미묘한 거리감에서 시작된 밀당은 코미디로 번지고, 결국엔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는 진지한 순간으로 흘러갔다.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청춘의 불안과 성장통을 담아낸 '쌈, 마이웨이'는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고동만과 최애라, 친구에서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엔 어색한 설렘보다 더 진한 현실이 담겨 있었다. 안정된 길 대신 ‘마이웨이’를 택한 두 사람처럼, 그 시절 우리도 다들 흔들리며 제 길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그들의 투박한 사랑과 좌충우돌이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이름부터 오해로 얽힌 '또! 오해영'은 조금은 기묘한 이야기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자, 그리고 미래를 보기 시작한 한 남자. 가벼운 해프닝처럼 시작했지만, 순간순간 깊어지는 감정과 상처가 묘하게 울림을 남겼다. 일상적인 말 한마디, 평범한 술자리, 작은 눈빛의 교환이 어쩌면 가장 큰 로맨스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작품은 '뷰티 인사이드'다. 한 달에 일주일은 다른 얼굴로 살아야 하는 여자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의 만남. 판타지적 설정이지만, 결국 그 이야기의 무게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에 있었다. 겉모습을 넘어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는 장면들은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웃음과 설렘 뒤에 남는 긴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로맨스 코미디는 대체로 가볍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각자의 사랑 방식, 꿈을 향한 갈망, 타인에게 드러내기 힘든 외로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우리는 잠시 현실을 잊고 웃는다. 그리고 문득, 그들의 대사를 따라 우리 마음속 질문에도 답을 찾게 된다.
언젠가 지친 하루가 끝난 저녁, TV 속 작은 세계에서 불쑥 피어나는 웃음과 설렘을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