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늘한 액션, 한국 드라마가 남긴 흔적

배신과 복수가 교차한 다섯 편의 기록

by 이슈피커

어두운 방 안, 조명이 꺼진 화면 위로 주먹과 총성이 번쩍일 때가 있다. 숨소리마저 삼켜지는 순간,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처럼 가슴이 조여 온다. 한국 드라마가 만든 액션의 장면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다. 싸움 뒤에 남는 것은 흉터와 여운,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들이다.

2.jpg 사진=유튜브 ‘KBS Drama’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이리스〉다. 한국 첩보 액션 드라마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었다. 국가안전국 요원의 사투, 조직 아이리스와의 대립, 사랑과 임무 사이의 갈등. 눈 덮인 설원에서 이어진 총격전, 도시의 옥상 위에서 터지는 배신의 순간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다를 바 없었다. 시청률 30%라는 기록보다 오래 남은 건,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무게감 있는 선택의 순간이었다.

3.jpg 사지=유튜브 ‘디글 클래식 :Diggle Classic’

〈나쁜 녀석들〉은 정의와 악을 기묘하게 맞세운 작품이다. 악을 잡기 위해 더 악랄한 자들을 풀어놓는다는 발상은 낯설지만 강렬했다. 형사 오구탁이 모은 팀은 전직 폭력배, 살인마, 청부업자였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장면 속에서도 시청자는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잔혹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정서. 결국 악으로 악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드라마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힘을 입증하며 오래 남았다.

4.jpg 사진=MBC 홈페이지

시간이 흘러 〈검은태양〉이 방영됐다. 1년 만에 임무지에서 돌아온 국정원 요원 한지혁. 그에게 붙은 이름은 ‘사신’이었다. 살아 돌아온 이유가 곧 싸움의 시작이었다. 동료의 배신, 비밀스러운 세력, 무너져가는 조직. 남궁민의 눈빛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는 차갑게 이어졌다. 도시의 어둠 속을 달리던 그의 발걸음은 늘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단순한 첩보극이 아니라, 내부 배신과 의심이 교차하는 서늘한 기록이었다.

5.jpg 사진=유튜브 ‘Netflix Korea 넷플릭스 코리아’

학교라는 좁은 무대에서도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약한영웅〉은 강하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맞서 싸우는지를 보여줬다. 겉으론 연약한 모범생 연시은은 머리와 계산으로 폭력에 대응했다. 친구를 지키려는 마음이 무기가 되기도 했다. 교실과 골목에서 벌어지는 주먹다짐은 단순한 학원물이 아니었다. 상처를 품고 다시 일어서는 아이들의 모습은 성장과 생존의 이야기였다. 이어진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더 큰 무대, 더 치열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분노와 우정이 부딪히는 순간, 화면은 더욱 거칠게 흔들렸다.

6.jpg 사진=넷플릭스 인스타그램

그리고 〈마이 네임〉. 윤지우의 싸움은 복수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고, 범인을 찾기 위해 조직에 몸을 던졌다. 경찰에 잠입해 또 다른 삶을 살아가던 그녀는 끝내 가혹한 진실과 마주했다. 아버지를 죽인 이는 바로 곁에 있던 존재였다. 윤지우의 분노는 복수의 칼이 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 무게를 견뎌야 했다. 스산한 골목, 어둠이 깔린 밤거리에서 그녀의 눈빛은 오래도록 남았다.


다섯 편의 드라마는 서로 다른 무대에서 시작했지만, 공통된 온도를 품고 있었다. 국가와 조직, 학교와 거리. 공간은 달랐지만 싸움의 이유는 결국 인간에게 있었다.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누군가는 정의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주먹을 쥐었다.


액션은 폭력의 과시가 아니었다. 싸움은 언제나 더 깊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남는 건 긴장과 여운. 마치 끝나지 않은 질문처럼 우리 곁에 머무른다.


끝내 결론 없이, 서늘한 공기만이 남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년의 공백, 다시 스크린 위에 선 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