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로운 집·보장된 미래, 그 안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우리가 만든 성, SKY 캐슬

by 이슈피커
1.png 사진= JTBC 공식 홈페이지

겨울이 깊어지던 어느 저녁이었다.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창밖은 벌써 어두웠다.

달력은 아직 12월 초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해는 유난히 긴 겨울 같았다.

조용한 집안, 혼자 앉아 리모컨을 들었다.

그저 아무 채널이나 돌리다 잠깐 멈춘 화면에서 뜻밖의 드라마를 발견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유럽풍 석조 타운하우스, 그 안에 사는 부내나는 사람들, 비슷한 옷을 입은 아이들.

그들이 입에 올리는 대학 이름은 늘 하나였고 그들의 눈빛엔 결의에 가까운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처음엔 그저 궁금했다.

입시 이야기라면 뻔한 결말일 것 같았고 성공과 실패, 눈물쯤으로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첫 회가 끝났을 때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멍했고 화면에 비친 마지막 장면이 자꾸만 눈앞을 맴돌았다.

2.png 사진= JTBC 공식 홈페이지


JTBC 드라마 ‘SKY 캐슬’.

그 작품은 한 편의 드라마라기보다는 어떤 충격 같은 것이었다.

익숙하다고 여긴 현실을 낯설게 꺼내 보여주는데 그게 또 너무 정교하고 무자비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빠르게 전개됐다.

죽음으로 시작한 입시 이야기

그 죽음은 단지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시작된 균열은 각 인물의 마음과 관계, 욕망의 깊이를 하나씩 보여주는 문이 됐다.

화면 속 ‘스카이 캐슬’은 상상 속 공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실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커피잔을 손에 쥔 사모님들의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대화.

그러나 그 안엔 이웃 간의 정과 사랑 따위가 아닌, 그저 욕망만이 가득했다.

그곳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다.

헌신이라 믿는다.

헌신은 점점 왜곡되고 결국엔 사랑인지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누군가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덮는다.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입시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 부모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치열함,

그 안에서 버텨야 하는 아이들의 고요한 비명.

3.png 사진= JTBC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과연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걸까.

아이에게 해주는 ‘최선’은 정말 그 아이를 위한 것일까.

‘SKY 캐슬’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물음에 있었다.


어떤 회차는 다 보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고

또 어떤 회차는 너무 숨이 막혀 도중에 꺼버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시 리모컨을 들게 되는 건 그 이야기 안에 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 작품이 훨씬 더 복잡하고 아프며

무언가를 내 안에서 계속 건드리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드라마가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결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허무하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만큼 현실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 둘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완벽한 마무리를 원하면서도 이야기에 완벽한 결말이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4.png 사진= JTBC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따금씩 몇몇 장면들이 불쑥 떠오른다.

아이를 위해 잠을 줄이던 엄마,

무표정한 얼굴로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율하려 했던 누군가의 손끝.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자체가 하나의 ‘스카이 캐슬’일지도 모른다.

겉으론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또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곳


드라마는 입시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나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입시라는 틀 안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과도한 경쟁 사회 현실을 꼬집는다고 생각한다.


과연 남들보다 우수한 것이 행복한 삶일까?

남들을 짓밟고 끌어내리고 선두를 차지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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