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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우리는 웃음이 필요했다

스크린 속 ‘보스’가 우리를 웃게 한 이유

by 이슈피커

추석 연휴, 우리는 웃음이 필요했다


연휴 마지막 날, 극장 로비는 여전히 북적였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혼자서도 망설임 없이 티켓을 끊는 사람들. 다들 무언가를 잃은 듯, 또 무언가를 되찾으려는 얼굴이었다. 나는 매표소 앞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이름 하나에 발걸음을 멈췄다.


‘보스’ – 예매율 1위.

1.jpg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사실 처음엔 별 기대가 없었다. 조직의 차기 보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코믹 액션이라니, 어딘가 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표를 끊고 들어선 극장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시작부터 관객들의 웃음이 퍼졌다. 자주 터지는 농담과 몸짓, 그리고 배우들의 리듬감 있는 호흡. 스크린 위 인물들이 진지할수록, 관객은 더 크게 웃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들은 지금, 웃을 이유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조우진이 어색하게 ‘보스’를 양보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 장면은 어쩌면 이 시대의 풍경 같았다. 욕심을 내려놓으려는 사람, 체면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전히 허둥대는 우리. 웃음 뒤에 조금의 쓸쓸함이 남았다. 그런 감정이 좋았다. 웃고 나서 마음 한구석이 살짝 저릿한 영화.


‘보스’의 흥행 소식은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들었다.

개봉 3일 만에 누적 관객 67만 명, 예매율 1위.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뒤에 숨은 온도는 다르다.

연휴 동안 사람들은 왜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

아마 이유는 단순했을 것이다.


피곤한 한 해의 고비에서,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었던 것.

리뷰를 읽어보니 대부분 비슷했다.

“가족끼리 보기 좋다.”

“배우들 케미가 좋고 웃음이 많다.”

“명절에 딱 어울리는 영화.”

이 짧은 문장들이 흥행의 원인이자 답이었다.

2.jpg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옆자리의 중년 부부는 팝콘을 나눠 먹으며 영화 내내 웃음을 터뜨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이런 영화는 그냥 기분 좋게 봐야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스크린 속의 ‘보스’보다, 그 웃는 얼굴이 더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같은 시기에 개봉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예술성과 작품성, 영화제의 기립 박수, 그리고 거장이라는 타이틀.

모든 게 ‘보스’보다 훨씬 무게감 있었다.

그럼에도 관객의 선택은 달랐다.


영화관에서 만난 중년 남성 한 분이 말했다.

“요즘은 머리 아픈 영화보다, 그냥 웃고 싶어요.”

그 말이 어쩐지 모든 걸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관객은 피로에 지쳤고, 영화는 그 피로를 풀어주는 도피처가 되었다.

스크린을 떠난 뒤에도 웃음이 잔상처럼 남았다.

퇴장하는 사람들 사이로 들려오는 대화들이 좋았다.

3.jpg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조우진 진짜 재밌다.”

“명절에 이런 영화 하나씩 나와야 돼.”

“간만에 잘 웃었네.”

이건 단순한 ‘흥행 성공’의 언어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다시 극장을 찾게 된 이유,

그리고 웃음이 가진 복원력의 증거였다.


한편, 같은 날 2위를 차지한 ‘어쩔 수가 없다’는 13만 명을 모았다.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다룬 작품이라지만, 명절 극장가의 분위기엔 다소 무거웠다.

반면 ‘보스’는 명절의 공기를 정확히 읽었다.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지금’을 담은 코미디였다.

그 점이 흥행을 만든 것 같았다.

웃음은 결국 공통 언어니까.

흥행 수치만 보면 ‘보스’는 이미 승자였다.

개봉 첫날 23만 명,

그 뒤로도 3일 연속 1위.

팬데믹 이후 10월 개봉작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

4.jpg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극장에서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뒤, 한 영화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진짜 웃기고 따뜻했어요. 오랜만에 가족이랑 영화 보고 힐링했어요.”

그 문장 끝의 느낌표가 오래 남았다.

그건 단순한 관람평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록이었다.

지친 하루 끝에서,


누군가의 농담 한마디에 웃을 수 있는 힘.

그게 어쩌면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조직의 ‘보스’를 양보하는 남자,

그를 둘러싼 엉뚱한 경쟁,

그리고 그 안의 인간미.


‘보스’는 코미디로 포장된, 작은 온기의 이야기였다.

모두가 진지해지려는 세상에서,

이 영화는 “괜찮아, 그냥 웃어도 돼.”라고 말하는 듯했다.

극장을 나설 때,


로비 한쪽에서 관람객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웃는 얼굴들.

그 웃음이 진짜 영화의 결말처럼 느껴졌다.

명절의 소음이 가라앉은 뒤에도,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스크린 속 한 장면처럼,

그 웃음이 내 마음에도 잔잔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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