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사랑 사이, 흔들리는 발걸음
주말 저녁, 습관처럼 리모컨을 잡았다.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멈춘 화면 속에는 화려한 조명이 아닌 차가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그 화려한 이름 뒤에 숨은 균열이 첫 장면부터 드러났다. 무대 위의 인물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쩐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제목은 막연히 우아함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작부터 다른 색을 입혔다. 권력과 사랑, 두 단어가 부딪히며 흩어지는 파편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이 된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순간, 권력의 무게가 얼마나 잔인하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랑이란 말은 힘을 잃고, 권력은 냉혹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보통 정치 드라마라 하면 연설이나 음모가 중심이지만, 이 작품은 부부의 관계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2인 3각 경기를 떠올리게 한다. 나란히 달리면 앞으로 나아가지만, 한 발짝이라도 어긋나면 그대로 넘어지고 만다.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라는 이름은 결국 한 몸처럼 묶여 있는 자리였다.
차수연의 서사는 오래 남는다. 무명 활동가를 대통령으로 세운 킹메이커. 동시에 스스로도 퍼스트레이디가 되기를 갈망했던 사람. 어린 시절의 결핍이 그녀를 앞으로 밀어붙였고, 끝내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 정점에서 남편의 한 마디, “이혼하자”가 그녀를 무너뜨린다. 기쁨은 짧았고, 현실은 다시 지옥처럼 다가왔다.
현민철의 과거는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다. 고아원에서 함께한 형 같은 존재, 태훈의 비극은 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으로 남았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그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곁에 있던 수연의 손을 붙잡고 정상에 섰지만, 정점에 도착한 순간 그는 아내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권력은 두 사람을 같은 길로 묶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틈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2회에서는 그 균열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민철은 반복해서 이혼을 요구했고, 수연은 언론과 지지율을 이유로 단호히 거절했다. 사랑의 언어는 사라지고, 계산과 명분만이 남았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감정조차도 숫자로 환산되는 듯 보였다.
그 사이 딸 지유의 고백은 불을 붙였다.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다는 말. 분노하는 아이에게 수연은 “사생활은 존중하지만 들키지 말았어야 했다”라며 끝내 이혼을 막아섰다. 가족을 지키고 싶은 것인지, 권력을 지키고 싶은 것인지, 그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드라마는 이렇게 묻는다. 권력은 어디까지 사람을 변하게 하는가. 사랑은 어디까지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두 질문은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 권력은 타인을 희생시킬 수 있는 힘이라면, 사랑은 스스로를 희생하는 힘이라고 한다. 대조적이면서도 닮아 있는 두 얼굴이 얽히며 극은 묵직하게 흘러간다.
시청률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반등 없는 숫자들은 냉정하게 보인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작품은 천천히 시선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때로는 초반의 부진이 오히려 긴 여정을 위한 숨 고르기가 되기도 한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나니, 묘한 생각이 남았다. 드라마 속 갈등은 결국 허구이지만, 그 감정의 결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삶에서 작은 권력과 사랑 사이를 오간다. 가족 안에서, 일터에서, 혹은 마음속에서.
무대 위의 대통령 부부를 보며 나는 문득 내 일상을 돌아보았다. 누군가와 발을 맞춰 걷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한 걸음 차이로 함께 달리기도 하고, 함께 넘어지기도 하는 그 불안정한 균형. 아마 그 위태로움 속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숫자는 식어가도,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오래 남았다.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 여운만이 조용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