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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0%대,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얼굴들

빛나지 않아도 오래 남는 장면들

by 이슈피커
1.JPG 사진=쿠팡플레이 유튜브

퇴근길에 잠깐 켠 TV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박민영이었다.

한때 화면을 가득 채우던 그 표정, 특유의 단단한 눈빛이 여전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환한 미소 대신 낯선 어둠이 묻어 있었다. 드라마 제목은 ‘컨피던스맨 KR’. 그녀의 1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처음 방영 소식이 들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은 꽤 높았다.


“사기꾼 이야기래.”

“박민영이 이번엔 좀 다른 역할이라던데.”

기대가 섞인 말들이 오갔다. 화려한 캐스팅, 흥미로운 설정, 무엇보다도 오랜만의 복귀라는 이유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첫 회 시청률은 1%대 초반. 두 번째 회차에서 잠시 반짝 오르더니 이내 0%대로 내려앉았다.

드라마는 계속해서 제 속도를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사람들의 리모컨은 좀처럼 그 채널에 멈추지 않았다. 방송사도 편성 시간을 옮겨보며 숨통을 틔워보려 했지만,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2.jpg 사진=TV조선

이쯤 되면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그런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배우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이야기를 믿고 있는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민영은 여전히 단단했고, 박희순은 묵직했다. 주종혁은 섬세하게 흔들렸다.

서로의 표정이 맞닿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공기가 달라졌다.


그 장면들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무게였다.

10회에서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윤이랑이란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사람에게 되갚아주는 계획을 세웠다.

3.JPG 사진=쿠팡플레이 유튜브

차가운 눈빛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들이 엉켜 있었다.

박민영의 얼굴은 그 모든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게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시청률은 끝내 오르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컨피던스맨 KR’이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플릭스패트롤, 쿠팡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낯선 플랫폼 이름들 사이로 ‘박민영’이라는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한국에선 외면받았지만, 다른 어딘가에선 누군가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드라마 한 편이 흥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모든 노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세상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는지도 모른다.

어디에선가 지지부진한 하루가, 다른 어딘가에서는 뜨겁게 이어지고 있을지도.

종영까지 단 두 회.

4.JPG 사진=쿠팡플레이 유튜브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결말을 보여주든, 이미 그들은 충분히 싸워왔다.

0.7%라는 숫자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런 시청자들의 존재가 더 선명해진다.


어쩌면 ‘컨피던스맨 KR’은 시청률이 아니라 믿음의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속임수를 다루는 이야기지만, 정작 배우들은 어떤 장면에서도 거짓을 쓰지 않았다.

끝까지 진심으로 연기했고, 진심으로 흔들렸다.

그게 바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자신감(컨피던스)’이 아닐까.


모든 게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를 본 사람일지도 모른다.

박민영의 눈빛이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건 단지 캐릭터의 감정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고백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번에도 그녀는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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