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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Jun 28. 2022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네팔 콜라

히말라야 산골 로지(lodge)의 식사는 꽤 특별했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인편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카트만두처럼 선택지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숙소를 거칠 때마다 메뉴판에 적힌 글자가 점점 사라져갔다. 대신 옆에 놓인 숫자들이 슬그머니 몸집을 불렸다. 그건 높이 올라가고 있다는 일종의 이정표였다.


욕심을 부렸던 탓일까. 식도락을 기대하며 산을 올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여행지의 음식을 맛보고 싶었다. 해서 기름진 음식이 많아도 개의치 않았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최대한 담백한 메뉴로 식단을 유지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날 저녁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소화가 잘되는 편이 아니지만, 위 때문에 고생했던 적은 없다. 생소한 고통이었다. 위에 멍이 든 것처럼 아팠다. 걷지 못할 만큼 심한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먹기 어려웠다. 가장 힘들었던 건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몸 상태와 별개로 다행히 산행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히말라야는 높은 산이지만 목적지가 에베레스트는 아니었다. 게다가 늘 올라가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능선을 넘어 다른 능선으로 가기까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길 위에서 푸념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가끔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갈 때도 있었다. 부상자를 운반하는 구조대였다. 헬기에 손을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반가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데려가 달라고, 한 스푼 정도의 진심이 섞인 장난기였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운이 좋아 별 탈 없었던 것도 같다.



섬뜩한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 함께 가던 동기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을 때가 그랬다. 잠깐 쉬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종아리 정도 높이의 야트막한 돌담에 앉아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당나귀였는지 나무였는지 무언가를 사진에 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짧은 비명이 들렸다. 놀라서 돌아봤을 때 돌담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실종된 구간이 아니더라도 산맥에는 곳곳에 가파른 절벽이 있다. 발을 잘못 디디면 그게 마지막 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떤 길은 산사태로 일부가 무너져 내려서 더없이 위험했다. 브라질 소녀가 두 달쯤 전에 거기에 휘말렸다고 가이드가 말해주었다.


다행히 가이드가 내 동기에 대해 회상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가 떨어졌던 곳은 2m 아래 풀밭이었다. 몇 군데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멀쩡했다. 그는 연초를 마저 태우며 히말라야의 신이 자신에게 새로운 목숨을 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잠깐 갠지스강에 그를 떠내려 보내는 상상을 했다.



우여곡절만 손꼽아놓고 보면 히말라야에 있었던 시간은 악몽인 것처럼 느껴진다. 더웠고, 아팠고, 위험했고, 아찔했으니까. 충분히 멋진 경험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소한 기쁨 때문에 모든 기억을 미화하기도 한다.


어쩌면 ABC(Annapurna Base Camp)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건 콜라 덕분이다. 몸 상태를 생각하면 탄산을 마시는 건 꽤 무모한 일이었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만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실컷 걷다가 중간에 마시는 콜라 한 모금이란! 인생을 통틀어 그보다 맛있는 콜라는 마셔본 적이 없다. 한 캔의 가격이 2천 원을 넘어가도록 콜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신에게 새 삶을 받은 그 동기가 말했다. 10년 후에 다시 히말라야에 가자고. 아마 그곳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건 그 길 위에서 마신 콜라 한 모금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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