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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하 Jul 30. 2024

곰인형 인간

난 맞는 사람인가?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에는 고민들이 너무나도 많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일 테지만, 당연히 당연한 사람들 중 하나로써 이런 고민들을 소화해 내기에 어려울 때가 있다.

약 5년 전, 한 심리상담센터로 상담을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너는 항상 must적 사고를 통해 움직여지고 있구나.'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Must적 사고... 무언가 해야만 한다, 꼭 ~해야만 한다 정도로 이해했다.

그때 즈음의 나를 되짚어보니 정확히 짚어주신 말이었다.

'나는 항상 ~해야 할 것이야' '~이어야만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은 꼭 실행되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이 맞고 틀린 일인지의 기준이 모호하다. 태생적으로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들이 내 몸과 마음

곳곳에 묻어나 있을 테고 출생 후 시기별로, 환경에 따라, 겪게 된 경험에 따라 옳고 그름 또는 맞고 틀림을

판단하는 기능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멍을 때리거나 넋을 놓은 표정을 짓고 있다면 내 안에서는

무엇이 맞고 틀린 일인지 판단하는 생각들로, 그 판단에 기초되는 근거를 찾는 역동들이 대기업 공장의

기계들 마냥 분주히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떠오르는 한 기억을 소개하고자 한다.

길은 너무 많은데 길을 잃었던 경험이다. 약 3년 전쯤 양재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영상편집이나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무보조 일을 한 적이 있다. 매달 생활비가 부족했던 터라 2년제 전문대학교 생활과 병행해 주 6일

출근을 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체력과 정신력이 감당하기에

아침 강의 - 오후 출근 - 밤 퇴근 - 새벽 과제 및 음악 작업 루틴은 벅차다고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냈다.

더군다나 대학교 생활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일을 좋아했는데 학교행사 (라고는 하지만 그냥 실용음악과 합주 및 공연 활동 등. 사실 늘 있는 일이다)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 가지 못한다는 게 속상했다. (이것마저 가끔이고 사실 술집에 살다시피 했다.) 그런 일상에 피로감이 심해진 뒤로 퇴근 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와

당연히 집에 가려던 와중 발걸음이 멈췄다.

우측으로 800m 걸어가면 강남역. 사거리에서 광역버스를 타면 외롭고 공허한 자취방이 아닌 친구와 가족들이 있는 경기도 본가로 갈 수 있다.

좌측으로 가면 양재역. 자취방으로 돌아가 남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절차이고, 가장 정상적인(?) 루트이다.

정면에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을 통해 한 블록 정도 걸으면 나오는 버스 정류장. 마찬가지로 자취방

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이곳저곳을 경유하는 노선이라 소요되는 시간이 지하철보다는 훨씬 길다.

하지만 강남의 퇴근시간은 6시가 아닌 10시이다. 왜들 그렇게 야근지옥의 삶을 사는지..

현재 시각은 10시 18분. 지금 지하철역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가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동하며 피로도는 배가 된다. 심지어 사람이 몰리는 환승역에서 환승까지 해야 한다.

버스를 타면 시간은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골목골목을 거닐며 날씨의 향을 맡을 수 있다.

운이 좋아 버스의 창가 자리, 내가 좋아하는 우측 맨 앞자리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어차피 자취방에 도착하고 나면 쌓여있는 과제와 몇 주 째 계획만 하고 있는 음악 작업들이 꽉 찬 드럼세탁기 문을 열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빨래들처럼 애석하게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미친 듯이 회피하고 싶다. 학교 과제야 얼렁뚱땅 해치운다지만 이 피로도와 정신력으로 창작을 하기에는 무리다. 아니 한계이다. 그렇다고 안 해버리기엔 이미 미뤄온지 일주일 이상 지났다. 더 이상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나 스스로가 음악인으로서의 나를 더 이상 존중해 줄 수 없을 테고, 창작을 담당하는 뇌의 한 부분 (이 있다면) 은 내게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릴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젠 정말 한계다라고 생각해 집에 가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루만 아무 생각 없이 모든 일들을 내팽개치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기왕이면 본가에서 말이다.

우측? 좌측? 신호가 9초밖에 남지 않은 정면의 횡단보도? 미칠 뻔했다.

결국 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어느 곳으로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때의 난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를 온갖 이유와 조건을 갖다 붙여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고 싶어서 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약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택했으면 아무것도 안 했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기껏 해봐야 어플로 렌터카를 빌려 가까운 바다로 냅다 출발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또 기준이 없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림과의 싸움을 했던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야 한다는 의지

이러다 몸이 부서질까 우선 휴식부터 취하고 싶은 욕구

할 일을 해낼지 못 해낼지 감은 오지 않더라도 하루의 끝에 사소한 여유정도는 챙겨주려는 마음이 충돌했다.

난 내 속에서 싸우고 있는 미련한 마음 이들이 그저 끝없는 토론의 끝을 보기를 잠자코 기다렸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뭐가 정답이었는지, 왜 정답을 찾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늘 그런 식이었다.

우린 정답이 없기에 선택을 하고, 성취감도 실망감도 그로 인해 발생한다.

잘잘못의 기준마저 직접 손을 닿게 하기에는 너무 머리 아픈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평화와 안녕을 빌어주기에는 난 기부 한 번 해본 적 없지 않은가.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결국 답 없는 실랑이의 결론짓기는 실패한 채로 지금 이 시간 새로 산 공책의 두 쪽을 채웠다.

현재, 앞으로도 무엇이 맞는 일인지, 무엇이 적합하고 합당한 생각이며 가치관인지 집요하게 따져대며 살 테고 늘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일과 경험 정도는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나는 그냥 그렇게 영문 없이 굴러가는 세상과 시간 위 어딘가에 멍을 때리며 살았다.

뭐 이대로도 좋다. 결론이 없는 이 글도 완성은 했다.

계속 가보자. 난 할 게 없어서 글을 쓴다기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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