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운영하다 보면 가끔 마음이 턱 하고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 입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래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초·중·고를 다녔고,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과 수시전형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역균형 전형’에 대해 꽤 강한 반감을 드러냅니다.
“선생님, 지방 애들은 왜 따로 전형이 있어요?”
“서울이 왜 불리해요? 그럼 우리도 지방 가서 살까요?”
“차라리 서울 집값 더 올랐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특혜죠.”
이런 반응들은 솔직히 차갑고,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게 된 것이죠.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건 서울에서 자라며 쌓아온 ‘당연함’ 때문입니다.
풍부한 사교육 인프라, 수준별 수업, 촘촘한 입시 정보 등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값’이 되어 있기에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특혜로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들과 책상 사이에 앉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지방 학교의 현실을 한 번 상상해볼래? 방과후 수업도, 내신 대비 과정도, 진학 상담도
너희 학교만큼 준비돼 있을까?” 아이들은 잠깐 생각하다가
“근데 그건 그 친구들 문제잖아요.”
“지방은 공부 안 하는 분위기라고 들었어요.”
“그래도 서울이 더 경쟁이 심하니까, 우린 더 힘들죠.”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 냉담함을 탓하기보다는, ‘서울에서의 당연함’이 얼마나 공고한 구조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공정함은 모두를 똑같이 취급하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출발선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거야.”
하지만 아이들이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서울이 더 빡센데요?”
“그럼 왜 우리는 손해를 봐야 해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바뀌지 않죠.
그래도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이들은 아주 조금씩 흔들립니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차이도 결국 이 지점에 닿아 있습니다. 사교육은 기술을 알려주고, 공교육은 시야를 넓혀줍니다.
사교육은 성적을 끌어올리고, 공교육은 관점을 확장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두 가지 모두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입시’라는 한 방향으로만 밀려가고 있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곳만큼은 아이들이 점수만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울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경쟁력이 높아지는 구조, 지역 학생들은 들어설 수도 없는 사교육 장벽, 그리고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한 제도를 “특혜”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의 위험함을 조금씩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금방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하나가, 언젠가 그들의 시야를 조금 넓혀줄 거라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학원을 하면서 다시 배우는 교육의 힘입니다. 성적을 넘어서, 생각을 키우는 일.
그게 진짜 ‘균형’을 만드는 첫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