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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라 Dec 03. 2023

브레인 인 피스

<김자라 단편소설>


화려한 건물이었다. 별다른 장식은 없었지만 베일 듯 날카롭고 높게 선 빌딩의 모습에서 그렇게 느꼈다. 67층짜리 빌딩 앞에 선 민재의 검은 상복이 초라한 게 아니었다면 눈 앞의 건물이 화려한 것이었다. 발끝에선 망설임이 묻어났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그렇지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 민재는 왼손에 찬 낡은 가죽 시계를 한 번 들여다 보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 순간 민재를 움직인 것은 시간의 의지였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왼 손목에서 초침이 두근거렸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선풍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데스크에 앉아있던 여자가 민재를 알아보고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브레인피스의 코디네이터 김미영입니다. 오늘 방문 상담 예약하셨던 유민재님 맞으시죠? 반갑습니다. 상담실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그는 눈 앞의 여자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미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바가지 씌우는지 정신 차려야 한다며 고개를 털털 털었다. 여자는 건물 2층에 있는 상담실로 안내했다. 사방이 흰 벽으로 채워져 있고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 그리고 대형 스크린 하나가 있는 방. 마치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저희 브레인피스 프로그램 이용은 처음이시라고요. 우선 신청 정보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당일 긴급 프로그램으로 아버지 고 유성주님, 어머니 고 박해경님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두 분.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어요. 좋은 분들이셨는데."


민재는 또 한 번 고통스러운 기억을 읊었다. 슬픔을 삼킬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골든 타임은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희 브레인피스를 정말 잘 선택하신거에요. 저도 제 아버지를 브레인피스로 모셨는데, 일반 납골당에 모시는 것보다 훨씬 고인이 살아계신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죠."


미영은 상담실 스크린에 한 장의 사진을 띄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뇌가 들어간 유리 통이 사물함같은 공간에 켜켜이 쌓여있다. 말로만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든다.


브레인피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뇌 이식장, 일명 '통뇌장(통속의 뇌 이식장)'으로 유명한  상조회사다. 통속의 뇌라는 개념은 간단하다. 머리에서 뇌를 꺼내 통속에 넣고 '행복감'에 해당하는 전기 자극만 주면 어떻게 될까? 이 개념은 1980년대에 한 철학자가 제시한 것이었지만 실제 연구는 좀 더 이후에 이루어졌다. 21세기 말, 시쳇말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였던 미친 과학자 하나가 심장마비로 숨진 자신의 연인의 뇌만이라도 남기기 위해 연구한 것이 실제적인 유래다. 이 유래가 이어져 온 덕분인지, 23세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현행법상 '통속의 뇌'는 이용자가 사망했을 때만 사용이 가능하다. 즉, 뇌사가 아닌 심정지로 사망해야지만 사용할 수 있고, 사망자 본인이 아닌 유족의 의지로만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사전 뇌 이식장 신청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더불어 웰-다잉(Well-Dying)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사망자의 장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유족의 몫이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최후에 대한 선택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22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23세기에 들어서는 납골당을 대신하는 장례 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민재의 부모님도 그런 케이스였다. 웰-다잉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통뇌장에 대한 언급을 들은 민재의 아버지는 어머니까지 설득해서 사전 뇌 이식장 신청서를 썼다. 처음에는 어머니도 민재 본인도 어딘가 꺼림칙해서 아버지를 말렸다. 업체에서 제대로 돌보지 않아 뇌가 상하면 어떡하냐, 통속에 갇힌 걸 깨닫고 괴로워지면 어떡하냐, 뇌를 옮기는 과정이 고통스러우면 어떡하냐. 결국 아버지는 끝까지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얘, 나는 아무리 그래도 죽는 게 무서워. 내가 죽으면 땅속에서 벌레가 파먹느니, 항아리에 담겨서 봉안당에 갇혀있느니, 차라리 행복한 뇌로 남고 싶다. 단 2~3년 만이라도 말이야."



평생을 고생만 하며 사셨던 어머니도 결국 아버지께 동조하셨다. 두 분이 환하게 웃는 얼굴과 마지막 순간 괴로워하는 얼굴이 동시에 겹쳐 보였다. 그 사이 코디네이터는 민재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서명하게 만들었다.


"자, 이제 금액만 지불하시면 되는데요. 장기기증 코디네이터로부터 장기기증 시 긴급 프로그램의 기본료를 향후 10년간 정부지원으로 50% 혜택을 받으실 수 있다는 사실 고지 받으셨나요?"


"네, 그렇게 들었어요."


"비용은 월세로 지불하시게 되구요. 매주 1회 무료 '행복감' 전기자극이 있고, 매주 청소가 이루어지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유민재님 방은 34층 3번 방 c칸, d칸 나란히 붙여드렸어요. 동의서 작성 다 하셨고, 지금 바로 수술 후 안치 하도록 할게요."


"잘 부탁 드립니다."


여자는 민재에게 싱긋 웃었다. 민재는 억지로 입꼬리를 같이 올렸다.



민재는 나머지 3일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빈소에 누워있는 부모님의 머리는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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