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행자의 시선

비엔나의 낭만

by 꽃들레

시차적응은 다른 사람이야기인 듯 기절하듯 잠들었던 지난밤.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가 날씨를 확인했다. 반짝이는 햇빛을 보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졌다.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워서 놀랐지만 그저 일교차가 큰 것뿐이라며 애써 외면했다. 조용한 테라스, 2-3층높이의 커다란 나무, 낯선 가구들이 놓인 낯선 공간, 건물 벽 사이로 생긴 그림자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숙소는 주요 관광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어 이동하는 내내 지하철을 이용했다. 한국인 관광객답게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는데 마침 출근 시간대였다. 어느 나라든 출근시간대의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무채색의 옷과 무표정한 얼굴. 그래서인지 얇고 화사한 컬러의 옷을 입은 동양인 관광객인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면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꽤 많은 시선을 견뎌야 했다.


어제 겨우 두세 번 지하철을 타봤다고 익숙한 척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다행히 북적이지 않아 고요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은 시간. 창밖 풍경을 구경하다가, 신문을 읽는 사람과 입마개를 한 채 얌전히 엎드려 있는 커다란 개를 바라보았다. 눈알만 또로록 굴리던 그 보드라운 털뭉치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주인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출근하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Demel Vienna cafe로 향했다. 지상으로 올라가자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나 유럽에 와 있는 것 같아!" 온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다. 촌스러울지 몰라도 나는 정말 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유럽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럽출장을 자주 다녀왔던 남편은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담배 모양의 버튼이 재미있었던 담배자판기



날씨가 이렇게나 맑은데 어떻게 차분한 텐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걸음걸음 구경하느라 바쁘고, 사진 찍느라 바빴다. 부산스럽게 움직이지만 속도는 나지 않았다. 답답했는지 남편은 자꾸 걸음을 재촉했다. 카페 데멜은 일찍 가지 않으면 금세 자리가 차버려 오래 기다리거나 아예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에게 시간은 금이니까.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매장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줄이 너무 길면 포기하려 했는데 다행히 기다릴 만한 정도라 자리를 잡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매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10~15분쯤 지나 자리를 안내받았다. 혹시 창가 자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 구석진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멜랑슈, 아인슈페너, 카이저슈마렌, 자허토르테를 주문했다. 맛있다는 후기가 꽤 많아서 기대가 컸다.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찬 매장 안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옆자리 젊은 남녀였다. 앉아있는 내내 스마트폰을 한 번도 꺼내지 않고 서로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테이블이 좁은 탓에 가까이 앉아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요즘은 카페나 식당에서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다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것이 익숙하니까. 그래서인지 그들의 모습이 더 인상 깊었다. 나와 남편도 밖에서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그들을 보며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데 익숙해지자고.


왼쪽위 멜랑쥐, 왼쪽 아래 아인슈페너, 오른쪽 위 자허토르테, 오른쪽 아래 카이저슈마렌


솔직히 말하자면, 맛은 기대보다는 평범했다. 한국식 커피와 디저트에 익숙해진 입맛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인 맛은 약간 밋밋한 느낌이었다. 단맛도 쓴맛도 고소한 맛도 어느 하나 강하지 않고 어딘가 부족한 듯 밋밋한 느낌. 단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도 유명한 메뉴들을 직접 맛봤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인슈페너는 예전에 마부들이 마차 위에서 커피를 마실 때, 쏟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크림을 얹어 마셨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야기가 참 귀엽게 느껴졌다.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커피를 지키기 위해 쫀득한 생크림을 얹었다니.

그렇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다음 목적지인 슈테판 성당으로 향했다.




종교인이라면 이곳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겠지만, 비종교인인 나에게는 그저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였다. 성당 광장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고, 밖에서 바라본 성당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미사인지, 혹은 다른 의식인지 알 수 없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성당 내부의 장식에 감탄할 뿐이었다. 조금 더 알아보고 왔더라면 다르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린 듯 내부를 둘러본 뒤 전망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는데, 공간이 워낙 좁아 한 번에 탈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었다. 안내하시는 분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탑승해야 했다. 키가 크고 둥근 배가 인상적이었던 안내원 아저씨는, 환하게 웃는 얼굴에 장난기까지 더해져 꽤 유쾌한 사람이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차가운 바람에 한 번 놀라고, 탁 트인 경치에 또 한 번 놀랐다. 비엔나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건물들의 높이가 일정해서인지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멀리까지 훤히 내다보였다. 폐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비엔나에 도착해 가장 놀랐던 것은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였다. 굳이 말하자면 ‘최악’이라고 표현할 만큼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스며드는 담배 냄새는 걷는 내내 숨을 멈추게 했고, 진한 향수는 코를 찌를 듯 강하게 느껴졌다. 이것 또한 문화라면 문화겠지만, 나에게는 쉽게 적응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전망대에서 맞은 바람은 더없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속을 울렁이게 하던 냄새도, 코를 찌르던 향도 없는 깨끗한 공기. 눈까지 시원해지는 풍경까지 더해져 그 순간은 정말 완벽하게 느껴졌다. 성당 지붕의 화려한 장식과 전쟁의 흔적으로 까맣게 그을린 벽면까지 천천히 눈에 담았다. 그렇게 비엔나의 풍경을 충분히 바라본 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주요 관광지 주변에는 곳곳에 마차가 서 있었고, 걷다 보면 시내를 도는 마차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곳에서 마차를 타고 거리를 지난다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마차 위에 앉아 눈으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바라보고, 귀로는 또각또각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조각상처럼 가만히 서 있는 말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


슈테판 성당 옆 마너샵


슈테판 성당 옆에는 꼭 들러야 한다는 추천이 많았던 웨하스 과자를 파는 마너샵이 있었다. 여행 기념품으로도 많이 사 간다고 하는 그 과자. 매장 안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가득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유명하다고 하니 궁금해져 웨하스 하나를 사 보았다. 청설모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귀여운 인형도 눈에 들어왔지만, 유럽 물가를 감당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한 채,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관광지답게 정말 사람이 많았다. 식당테라스에도, 광장에도, 그냥 길 위에도. 하지만 북적이는 장소를 조금만 벗어나면 걸음은 금세 느려졌다. 부딪힐 걱정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고, 높이 솟은 건물을 눈에 담는다. 대체로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여행이지만 중간중간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더 바빠지는 것을 알지만 나는 눈에도, 카메라에도 이 순간을 모두 담아두고 싶었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색과 날씨, 그리고 그날의 감정으로만 남는다.





천장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성 페터 성당. 천장화의 규모에 한 번 놀라고, 내부의 화려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동양과는 또 다른 느낌의 화려함이었다. 온통 반짝임으로 가득한 공간. 어쩐지 마음이 절로 경건해져, 남편과 나는 말없이 그곳을 감상했다. 그리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을 찍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그건 왜 찍어?”

“예뻐서.”

대답하기 귀찮아서도, 피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냥, 예뻐 보이니까.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곤란하기도 하다. 예전에 일본의 한 소도시를 여행할 때 하수구 뚜껑을 찍은 적이 있다. 그곳은 뚜껑마다 다른 무늬가 새겨져 있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때 함께 있던 일행도 똑같이 물었다.

“그건 왜 찍어?”

그때도, 지금도 대답은 같다. 예뻐서. 거창한 이유는 없다. 아주 단순하고 솔직하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니까.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내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으로 향하던 중 물을 살 겸 마트에 들렀다. 다른 나라의 마트를 구경하는 일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다. 비슷한 듯 다른 식재료들과, 낯선 포장들이 하나하나 재미있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납작 복숭아였다.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과일이라, 여행 시기와 맞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아주 달고 아삭하다는 후기를 많이 봐서 꼭 먹어보고 싶었던 과일이었다. 과일코너에서 발견하고 아주 기뻤다. 남편이 신중하게 고른 복숭아를 가방에 넣고, 우리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알고 있던 도서관과는 완전히 다른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 도서관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보존을 위해 책을 직접 펼쳐보거나 대여할 수는 없었지만, 공간에는 분명 책 냄새가 배어 있었다. 약간은 꿉꿉하게 느껴지는 오래된 종이의 향. 그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빼곡히 채워진 고서들과 화려한 장식, 그리고 천장화까지.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자체로 꿈같은 공간이었다. 높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책 냄새가 가득한 이곳의 한 구석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일부 고서들은 한 페이지가 펼쳐진 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좋았다.



이번 여행 일정에는 전시 관람이 많았다. 책이나 프린트로만 보던 작품들을 원화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많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곳은 알베르티나 미술관이었다. 이곳 2층에서는 오페라 극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우리는 저녁 식사 후 야경을 보러 다시 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잠시 바라보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미술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박식한 편도 아니다. 누가 들어도 알 만한 이름 몇 가지를 아는 정도지만, 우리 부부는 전시 관람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네와 피카소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얕은 지식의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시 공간은 지하와 2층, 3층에 걸쳐 있었고, 규모가 꽤 커서 관람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모네와 피카소, 그리고 클림트까지. 분명 다른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도 많지만, 사람은 아는 것만큼만 보인다고 하지않던가. 원작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가까이 다가가 보이는 붓자국 하나에도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을 이렇게 마주하다니.

"인생 성공한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누가 보면 그림이라도 산 줄 알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에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사실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았다. 출발 전부터 좋지 않았던 컨디션이 비엔나에 도착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예정했던 일정 하나를 포기하고, 약국을 찾아 나섰다.





구글맵에 의지해 약국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예정에 없던 길을 걷다 보니 또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이 예쁜 가게, 빨간색이 어울리는 트램, 횡단보도의 신호마저도 그림처럼 느껴졌다. 여행자에게는 모든 풍경이 한 장의 그림이 되고, 쉽게 잊히지 않을 순간으로 마음에 남는다. 지도를 보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덕분에 나는 더 많은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도착한 약국에서는 영어로 증상을 설명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영어에 능숙한 것도 아니었다. 설명하는 쪽도, 듣는 쪽도 서툰 영어에 의지하다 보니 제대로 된 약을 구입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가볍게 해프닝으로 넘기고 싶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약이 꽤 간절했다. 결국 우리가 구입한 것은 감기약 성분이 들어간 목캔디 같은 사탕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다음 여행에는 반드시 감기약을 챙겨야겠다는 교훈을 얻은 채, 우리는 호프부르크 왕궁 정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이곳 정원에서 피크닉도 즐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초록색 잔디에 앉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피크닉을 즐기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운 공기와, 빠듯한 일정으로 피크닉은커녕 짧은 산책이 전부였다. 평소라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쉽게 예민해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마저 괜찮게 느껴졌다.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




그리헨바이슬

짧은 산책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학센이 맛있기로 유명한 그리헨바이슬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베토벤과 에곤실레도 찾았다는 그리헨바이슬. 그들이 식사를 했던 공간에서 나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입구부터 오래된 식당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자리 안내를 해준 서버 아저씨는 꽤 유쾌한 사람이었다.


추웠지만 오늘만큼은 꼭 맥주를 마시겠다는 생각에 맥주를 주문하고, 유명하다는 학센도 함께 시켰다. 양이 가늠되지 않아 일단 주문한 뒤 부족하면 더 시키기로 했다. 카페 데멜 이후 계속 걸어 다녀 많이 지쳐 있었는데, 음식을 기다리며 잠시 앉아 있는 시간이 유난히 따뜻하고 편안했다.



식전 빵과 맥주, 학센이 차례로 나왔다. 기대했던 학센에서는 살짝 돼지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겉은 바삭했고 속은 부드러웠다. 다만 우리 입맛에는 짠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꼭 추천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비엔나에서 먹은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나와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 하자, 유쾌하던 서버 아저씨가 왜 음식을 남겼냐, 배가 고프지 않았냐며 농담을 건넸다. 그런데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그렇게 유쾌하던 아저씨가 결제가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갑자기 태도가 차가워진 채 자리를 떠난 것이다. 음식을 남긴 것이 무례하게 보였던 걸까. 식당을 나서며 남편에게 물어보니, 카드 결제 과정에서 팁을 선택하는 화면이 있었는데 ‘팁을 주지 않음’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저씨의 유쾌함이 사라진 이유 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찾아보니, 팁은 선택 사항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는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매번 잊지 않고 팁을 남겼다.

문화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태도가 그렇게 바로 달라지는 모습은 어쩐지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팁을 주지 않음'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트램을 타고 다시 도착한 오페라 극장. 낮과는 다르게 화려했다. 가능하다면 공연도 보고 싶었지만, 드레스업에 대한 부담감과 높은 금액의 티켓가격에 외관만 구경하기로 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 화려한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인 밤이었다. 하루의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비엔나의 밤은 낭만적이었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또 하나 더해졌다. 신호등의 그림처럼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차가운 밤공기였지만 남편의 손은 따뜻했고,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숙소로 향하는 지하철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하루 종일 걸은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지만 남편과 나란히 앉아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은 오히려 편안하고 좋았다. 여행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집으로 향하는 느낌과 어딘가 닮아있다.

숙소에 도착해 낮에 사두었던 납작 복숭아를 나눠먹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니면 계절이 조금 지난 탓인지 생각보가 평범한 맛이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아삭한 식감만큼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여름에, 납작 복숭아가 가장 맛있는 계절에 다시 유럽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름의 달콤한 납작 복숭아를 기대하며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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