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꾹 다문 아이

by 윤슬빛

울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엄마가 휘두르는 파리채 뒷부분으로 종아리, 엉덩이를 계속 맞으면서도 나는 피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서있었다. 나중에 엄마 얘기로는 내가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서 더 맞았던 것 같다고 했다.


방바닥에는 내가 토해낸 가루약과 물약 잔해들... 그리고 덩그러니 누워있는 쇠숟가락이 있었다.

어릴 때 자주 아팠던 나는 약을 달고 살았다.

지금처럼 일회용 약병이 없던 시절이라, 약 먹을 때면 엄마는 숟가락에 가루약과 물약 그리고 약간의 물을 섞어서 주셨다. 늘 새끼손가락으로 숟가락을 살짝 저어서 잘 섞이게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한입에 꿀꺽. 빨리 먹어! 엄마 팔 아파."

하긴 숟가락에 있는 약을 나눠서 먹을 수는 없으니 한입에 꿀꺽이 맞긴 하다.

그게 엄마 말처럼 잘되면 내가 파리채로 맞고 서있는 일도 없었을 거다.


나는 아픈 것보다 약 먹는 게 더 힘들었다. 입도 짧아서 뭐든 잘 안 먹는 아이였고 특히 냄새에 민감해서 약 먹을 때가 되면 숟가락 위에 쏟아지는 가루약과 물약의 냄새 때문에 먹기도 전부터 콧구멍이 커지면서 목구멍이 닫히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한 번에 영양제를 5알씩 털어 넣을 만큼 뭐든 한입에 꿀꺽이 잘 되지만, 어린 시절 나는 약 먹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결국 그날 그렇게 약을 토해냈고 엄마는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것 같다.


"뱉지 마! 입에 물고 있으면 안 돼! 얼른 삼켜! 꿀꺽! 꿀꺽하라고!"

.

.

.

"우웨웩"


"아이 그!! 아이 그!! 못살아 진짜! 이게 어려워? 어? 그냥 꿀꺽 삼키는 게 이게 어려워?

진짜 바빠죽겠는데 왜 너까지 일을 만드냐!! 어?"


그리고는 파리채를 잡으셨다.

엄마한테 가장 가까이 있던 게 파리채여서 그걸로 맞은 것 같다.

밥 안 먹고 입에 물고 있다가 혼나는 날은 밥숟가락으로 맞았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손바닥으로 맞은 기억도 있으니...


그나마 학교 가는 날이라 등교시간이 있어서 덜 맞은 걸 수 도 있다.


나중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아 진짜? 우리 집도 엄마가 손에 잡히는 걸로 때렸어. 그래도 너는 파리채정도면 귀엽다 야. 우리 집은 건어물가게 하는데 너 말린 명태로 안 맞아 봤지? 졸라 아파. 명태 가시 박히는 줄 알았다니까. 나랑 오빠는 엄마가 화났다 싶으면 열라 뛰어서 도망갔는데 ㅋㅋ"


지금은 아이를 훈육할 때 체벌이 없지만, 80년대 나 어릴 때는(라때는 말이야!) 집집마다 엄마한테 혼났다 싶으면 기본 등짝 스매싱, 아니면 집 밖에 서있기, 아니면 가장 약했던 게 무릎 꿇고 앉아서 손들기였던 것 같다.

(우리 집만 그랬나...? ^^;)


아프게 더 세게 맞는다고 내가 약을 잘 먹게 되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다음에 약 먹을 때가 되면 나의 약 먹는 어려움에 + 또 토해서 엄마가 화날까 봐 두려운 공포심만 더해졌을 뿐인데.


그래도 그때는 그냥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컸다.

지금처럼 생각하고 따져서 엄마한테 말할 수 있는 생각도 못했고 만약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말할 용기도 없는 아이였다.


파리채로 맞으면서도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울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 집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대 식구가 모여 사는 집이었는데, 혼나서 큰소리로 울면 엄마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신경 쓰이셨는지 늘 "시끄러워! 뭘 잘했다고 울어? 울 거면 조용히 소리 내지 말고 울어!"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입술에 힘을 꽉 주고,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눈물을 흘리며 쏟아냈다.

내쉬는 숨 보다 들이켜는 숨이 더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때 소리 내지 못했던 울음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마음속 한 구석에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입을 꾹 다문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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