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싫은 당신도, 배움을 좋아했던 순간이 있다
“공부는 진짜 하기 싫어요. 그런데 배우는 건 재밌더라고요.” 학생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 어른들에게도 자주 듣는 말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지문을 읽을 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유튜브에서 유현준 교수의 건축학 강의를 볼 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 흥미에 맞는 영상을 먼저 제안해주고, 영상 길이도 대부분 10분 이내로 짧다. ‘지금 당장 알아두면 쓸모 있을 것 같은 정보’, ‘궁금했던 걸 쉽게 설명해주는 톤’은 뇌에 보상처럼 작용한다. 학창시절 역사책으로 배우던 내용을, 이제는 '지식 해적단' 같은 채널을 통해 스스로 찾아 듣는다. 영어 지문이던 역사 영상이던 두 경험 모두 ‘지식을 얻는 과정’인데 왜 하나는 지겹고, 다른 하나는 재밌는 걸까?단지 책이아니라 영상이고, 유튜브 추천알고리즘의 역할이 피드에 내가 정확히 원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 때문일까?
‘공부’라는 단어는 의무감과 피로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고 있다. 반면 ‘배움’은 흥미, 성장, 이해의 기쁨과 맞닿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재적 동기(보상이나 처벌 때문에 하는 행동)와 내재적 동기(흥미와 만족감에서 우러나는 행동)로 구분한다. 공부가 고통스러웠던 건, 어쩌면 우리가 지식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동기화된 방식’으로 강요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듀오링고(Duolingo)는 현재 세계 최고의 언어 학습 앱으로, 전 세계 5억 명 이상이 다운로드한 글로벌 언어 교육 플랫폼이다. 이 앱의 특징은 학습을 게임처럼 설계했다는 점이다. 수업을 듣고 퀴즈를 풀고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을 하고 친구들과 렝킹 경쟁을 한다. 공부의 의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깨부수는 전략으로 2023년 기준으로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7천만 명을 넘었고,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들이 SAT 공부 대신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일도 흔하다. 스테이지를 깨고, 보상을 받고, 캐릭터와 대화하며 틀려도 귀여운 피드백을 받는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틀리면서도 계속 배운다. 핵심은 ‘강요하지 않아도’ 매일 꾸준히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듀오링고는 이를 '습관의 루프'라 부른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배워왔다. 말하는 법, 걷는 법, 자전거 타는 법. 이런 배움은 지시나 평가 없이도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다. 하지만 ‘공부’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뭔가 달라졌다. 경쟁, 비교, 실패의 두려움이 따라붙었다. 그래서 우리가 싫어했던 건 공부 자체가 아니라, 선택할 수 없었던 방식, 평가 중심의 구조, 의미 없는 반복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점점 더 많은 학습 플랫폼과 학교, 교사들이 ‘자발성’을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어떤 학교는 질문 중심 수업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어떤 교육자는 실패해도 괜찮은 피드백 환경을 만들고, 어떤 플랫폼은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공부가 배움으로 다시 회복되는 길, 그건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시작되는 지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