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본, 실패
왜 한국 교육은 실패를 가르치지 않을까?우리는 늘 성공을 목표로 교육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패는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성인이 된 내가 학생이었을 때를 되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 입시까지 이어지는 정답 중심 교육은 ‘틀림’에 대한 불안과 회피만 키운다. 오답을 적으면 점수가 깎이고, 실수를 하면 ‘부주의한 아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모험을 꺼리게 되고, 틀릴 바엔 아예 시도하지 않는 태도를 익히게 된다. 실패를 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실수를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은 성장을 막는다.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는 줄 알았던 아이는, 정답이 없는 세상에 나가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게 된다.
한국에서 실패는 대체로 ‘되돌릴 수 없는 낙인’이다. 한 번 떨어지면 재기할 기회는커녕, 그 경험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교실에서는 실패가 ‘수업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핀란드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종종 이런 수업이 벌어진다. 아이들에게 도전적인 수학 문제를 준다. 일부러 평소보다 한 단계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교사는 말한다. “이번에는 일부러 틀려 보세요.” 그날의 수업 목표는 ‘정답’이 아니다. 아이들은 실수한 문제를 돌아보고, 어떤 생각을 했기에 이런 실수를 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나누고, 오답 속에서도 논리를 발견한다. 이 과정은 채점의 대상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틀려서 고마워. 너 덕분에 우리가 새 걸 배웠어.” 핀란드의 교육 철학에는 “오류로부터의 학습”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실패는 무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탐색했기 때문에 겪는 경험이라고 여긴다. 한국 교실에서 ‘틀린 문제는 빨리 잊어야 할 오점’이라면, 핀란드 교실에서는 ‘모두가 함께 탐험할 수 있는 지도’가 된다.
실패 없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겪는 실패는 대개 대학 이후, 혹은 사회에 나와서다. 연애의 실패, 취업 실패, 기획의 좌절, 관계에서의 단절은 교과서에 있지 않다. 정답 없는 문제 앞에서 그들은 종종 멈춰 서게 된다. 실패가 너무 생소해서,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자기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존감 전체가 무너진다. 어릴 적부터 실패에 익숙한 아이는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실패가 낯선 아이는 그것을 ‘자신의 전부’로 받아들인다. 결국,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아이는 ‘성공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일부 대학교에서는 ‘패스트 패일(fast-fail)’ 방식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각자 혹은 팀을 이루어 작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는데, 실패를 전제로 기획하게 되어 있다. “앱을 만들되, 실행은 되지만 사용자 만족도는 낮게 설계해보자.” “의도적으로 설계 오류가 들어간 구조물을 만들어보자.” 같은 기획을 장려한다. 학생들은 이후 그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고쳤는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피칭(pitch) 형식으로 발표한다. 중요한 점은 이때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느냐”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가 핵심 평가 기준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실패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을 얻는다. 오히려 실패한 실험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한다. 실패한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발명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실패를 미리 연습시킨 교육은, 결국 실패를 통해 혁신을 만드는 조직 문화로 이어진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 구글은 “실패하지 않으면 충분히 도전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문장을 사내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3M 역시 ‘Post-it’ 메모지를 포함한 여러 제품들이 실패한 실험의 부산물에서 탄생했다. 이런 문화를 직원 교육에 반영한 기업들은 신입 사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미션을 준다. “의도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를 기획하되, 그 과정을 최대한 분석하고 기록하라.” 여기서도 초점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다. 실험이 성공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가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 훈련은 단순한 창의성 교육을 넘어, 문제 해결력과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함께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하나다. 실패는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은, 이 능력을 키워주는 데에 있다. 한국 교육이 정말 '성장 중심'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그 실패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충분한 지지와 시간을 제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