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걸리는 의식

김장

by 윤 슬

어릴 적 살던 주택 화단에 땅을 팠다.

항아리 두세 개를 묻었다.

항아리 세 단지는 엄마의 보물이었다.

김장김치와 동치미 항아리였다.

한겨울 "김치 꺼내 와라" 엄마가 이야기를 하면 내복바람에 항아리 뚜껑을 열고 비닐을 걷어 배추김치 한 포기를 꺼내고 다독다독 해주고 뚜껑을 덮었다.

사 남매 중 언니나 내가 항상 엄마에게 지목당했었는데 추워서 정말 나가기가 싫었었다.

도마 위에 놓인 배추김치 한 포기를 칼로 사각사각 썰어내면, 밥상 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씰밥 앞에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침샘을 자극한다.

여름 내내 엄마는 옥상에 고추를 널어 말린다.

햇빛을 듬뿍 받으며 말라가는 고추, 행여나 비라도 쏟아지는 날엔 온 식구가 우르르 뛰어 올라가 고추를 걷었다.

조금이라도 비를 맞은 고추는 마른 수건으로 잘 닦아내고 방안에 펴놓고, 선풍기를 회전시킨다. 집안에 온통 매운 내가 진동을 한다. "에취 에취 " 재채기가 멈추지 않았다. 여러 날을 햇빛에 제대로 말려진 고추는 빨갛고 투명한 듯 매운 단내가 난다.

방앗간에 가서 곱게 빻아온 고춧가루를

손으로 만져보며 "빛깔 참 좋네"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스친다.

새우를 곰삭혀 새우젓도, 멸치를 삭혀 내려 멸치액젓도 직접 만드는 엄마의 정성으로

우린 평생을 맛있는 김치를 먹고사는 중이다.

참! 모든 재료가 다 중요 하지만 "소금" 천일염으로 해마다 한 자루씩 저장하며 간수를 빼주면 짠맛과 단맛이 조화로운 소금이 된다고 했다. 이소금으로 젓갈을 담그고, 배추를 절궈야만 맛있는 김치가 완성된다.

절인 배추를 사서 하자고 얘길 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하신다.

올해 김장을 저번주에 했다.

4남매가 모두 모여 엄마의 선두지휘아래 움직였다.

평균 50세인 자식들 "아이고고"하며 "아우 허리야"를 외치며 앉았다 일어나길 힘들어했다.

자식 먹이겠다고 80살이 되어서도 김장을 놓지 못하는 엄마...

지인분의 친정엄마께서 작년에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김장을 하셨다고, "아직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있는데..."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엄마가 해준 마지막 김치라고 생각하면 아까워서 먹지도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번주에 김장을 해왔다
남은 배추속에 버무린 겉절이 김치

"엄마 엄마 힘든데 이제 김장하지 말자!"라고 얘긴 하지만, 사 먹는 김치는 엄마의 깊은 손맛을 느낄 수가 없다.

김치찜이나 김치찌개를 끓여보면 확연하게 차이나는 맛, 평생 엄마의 김치에 길들여졌기에...

앞으로 몇 년이나 엄마와의 김장을 할 수 있을까?

김장을 해마다 의식처럼 정성을 다해 치러냈던 엄마의 50년의 세월 안엔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의 깊이도 곰삭아 스며 있으리라.



김장김치


곰삭아가며

때론 톡 쏘는 상큼함으로

추운 겨울 우리의 몸과 마음을

채워준다.

허기진 위장을 따스하게 덥혀준다.


그해겨울을 또 봄을 여름을 버티도록

엄마는 사계절 애를 쓰셨다.

몇 해 걸쳐 간수를 뺀 소금으로

멸치를 삭혔고

고추와 마늘을 널어말려

좋은 재료를 준비하였다.


달고 짜고 매운 사랑을 채워 넣었다.

밥상머리로 모이게 만드는

엄마의

세상 많은 음식이 넘쳐나도

뜨신 밥에 쭉쭉 찢어 올린 김장김치 한 줄 그 맛을 못 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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