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눈앞에 나타나지 말길

길냥이

by 윤 슬
나무위에 고양이를 찾아보세요


부우우웅, 걷고 있는 내 옆을 지나 차가 앞질러간다.

후다다닥, 고양이 한 마리가 아슬하게 차 앞을 가로질러간다.

순간 멈짖 멈춰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행이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뚜벅이인 나의 주 활동지인 검단사거리역에 나가려면 세월아 내 월아 두리번거리며, 길가풍경을 이것저것 참견하며 걸어가면 30~40분이 걸리고, 시간이 늦거나 속보로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린다.


최근에 길에 사는 쥔장들 길냥이들과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도망 안 가고 한 귀퉁이에서 낯선 인간을 경계하며 눈빛을 쏴댄다.

천천히 눈을 깜박깜박하고 바라보면 깜박 깜박이며 눈인사를 받아주기도 한다.

종종 캣맘들이 만들어둔 밥자리가 보이기도 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방치된 주택 마당에서 한가로이 햇빛을 쬐고 있는

냥이들이 보이기도 한다.

광합성중 눈이 마주친 턱시도냥이

고양이 집사이어서 그럴까? 나에게서 고양이 냄새가 나는 걸까? 종종 알바로하고 있는 고양이 펫시터 때도 예민하고 사람을 경계한다던 아이들도 여러 번 보다 보면 친근하게 다가와 냥냥 거리며 대답도 해준다.


길냥이의 간택, 냥줍 이란 제목의 영상들을 볼 때마다 고양이를 품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따스하고 정이 많은 사람 같다.


그래서인지 제발 아프거나, 버려진 고양이들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길,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 다닌다.

남편에게도 신신당부를 한다.

길에 새끼고양이가 있다고 덥석 데리고 오지 말라고, 폭염이 심했던 어느 여름날 아파트단지에 치즈냥이 한 마리가 울고 있어서 물과 사료를 챙겨준 적이 있다.

얼마나 갈증이 났었는지 5분 넘게 물을 마셨다. 어찌나 측은 한지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예쁘게 생겼어? 데리고 오지 그랬어" 수저 하나 얹는다고 생각하고 데리고 오지!"라고...

남편은 바로 내게 구사리를 들었다.

"생명하나 거두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안쓰러운 마음이야 가득하지만, 집에 있는 냐옹이들도 생각해야 하고, 마음만으로 현실을 모른 척하고 거두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질적인 책임과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는 함께해야 하는 무게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끔 당근에서 캣맘에게 고양이 간식등을 무료 나눔 해준다던지, 개인고양이 단체등 구조 후 치료비모금에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는 정도이다.


그들의 길생활을 인간들이 좌지우지할 순 없다.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이니

길고양이들을 도와주려는 사람과, 학대를 하는 사람, 다만 학대하는 인간들이 사라졌으면 한다.

인간들 틈에서 길냥이들의 삶은 평균수명 3년밖에 안된다 하고, 악마 같은 인간들에 의해 몰살되기도 한다.

고양이는 생태계 내에서 포식자 역할로 먹이사슬을 안정화하고, 생물 다양성 유지와 영양 순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다만, 도시 환경에서는 개체 수 조절 등 추가 관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도로옆 쓰레기더미 근처에서 굳어져 말라붙은 고양이 사체를 보았다.

병원 예약 시간이 늦어져 사체처리 해주는 곳을 검색하다, 진료를 보느라 깜박해버렸다.

집에 와서 늦게 생각이 났고,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미안한 마음에 마음속으로 길 위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고양이의 안식을 빌어줬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항상 지지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로 나눠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길고양이나 유기견들을 보는 입장도 모두 다르다.

먼 옛날부터 세상에 태어나 같은 지구 위에 인간들이 겪어온 온갖 풍파 속에서도 같이 살아온 존재들이니 지금도 앞으로도 공생해야 한다.

만약 내 앞에 아프거나 어미에게 버려진 아기고양이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둘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나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래본다.

올겨울도 추운 길 위에서 잘 버텨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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