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과 단절의 성채
지나는 길, 뚝딱거리는 공사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먼지와 굉음을 수시로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들 사이로 하루가 다르게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건물
24년도 방송 매체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가 울려 퍼지며 빌보드 차트 1위까지 했다는데, 나에게 아파트는 신나는 노래 가사이기 이전에 삶의 층층이 쌓인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다.
내가 살아본 첫 아파트는 17살,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분양된 지 3년 된 15층 맨션아파트의 6층. 매일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조차 신기하고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단지 내에는 입주민 전용 버스가 다녔고, 놀러 온 친구들은 베란다 창밖 풍경을 보며 감탄하곤 했다. 아파트보다 주택에 사는 사람이 더 많았던 그때, 아파트는 동경과 편리의 상징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마흔여덟에 다시 시작한 아파트 생활이 8년째 이어지고 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내 눈에 비친 아파트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40층, 50층까지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는 보기만 해도 무섭고 아찔하다. "세상에 아파트는 저리 많은데 왜 내 집은 없나" 한탄하던 시절을 지나 '영끌'을 해야 겨우 발을 들일 수 있는 부의 척도가 되어버린 곳. 명품 브랜드니 조식이니 하는 화려한 수식어들에 한때는 신축 입주를 꿈꿔보기도 했지만, 지금의 마음은 사뭇 다르다.
결정적으로 정나미가 떨어진 건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한번 귀가 트여버리자 평화롭던 집은 스트레스의 진원지가 되었다.
쿵쾅거리는 발망치 소리, 새벽까지 벽을 타고 흐르는 TV 소리, 여름날의 실외기 진동음... 문득 내 머리 위와 발아래, 정확히 똑같은 위치에 누군가 누워 있다는 상상을 하면 소스라치게 싫을 때가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다. 2주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소음을 내던 옆집 이웃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찰나의 눈인사조차 외면하며 집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미안하다는 가식적인 인사치레조차 사라진 이곳에서, 겨우 인사를 받아주는 동네 꼬마들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이다.
이제 나는 아파트를 피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소득에 무거운 관리비를 감당하며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 성냥갑처럼 줄지어 선 이 차가운 콘크리트 더미는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안식처겠지만, 나에게는 이제 사부작거리며 내 손으로 가꿀 수 있는 단독주택의 평온함이 더 간절하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윤수일의 '아파트'는 낭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곁의 아파트는 너무 높고, 너무 비싸며, 너무나 고요해서 오히려 시끄럽다. 화려한 커뮤니티 시설보다 중요한 건 벽 너머 사람의 온기였음을, 엘리베이터의 정적 속에서 새삼 깨닫는다. 이제는 수직으로 높게 쌓아 올린 타인의 성채를 바라보는 대신, 내 발이 땅에 닿는 곳에서 나만의 속도로 숨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