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주는 감성
1992년 1월 26일
20번째 생일이었다. 음력 12월로 생일을 쇠서 다음 해가 돼야 생일이 된다.
생일 선물로 받은 봄여름가을겨울의 lp 한 장,
집 근처 고기뷔페에서 알바를 했다. 직원으로 일하던 오빠와 친해졌는데 그때 오빠가 생일 선물로 줬다.
오빠의 이름은 '김상덕' 백혈병에 걸려 고생하다, 백혈병 환우회 간사로 보험적용이 안 되는 약값을 투쟁하며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게 봉사하고 삼십 대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김상덕 간사님에 대하여
백혈병 환우회의 정신적 지주: 본인도 백혈병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백혈병 환우회'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글리벡 투쟁의 주역: 당시 한 알에 수만 원씩 하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가격 인하와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거리에서 투쟁하셨던 분입니다. 덕분에 지금 수많은 환자가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 안타깝게도 2005년, 병세가 악화되어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십 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란 곡을 들으며 친한 중학교 때 친구와 얘기를 했다.
"넌 십 년 전의 일기 있어?"
"아니 난 없어 너는?"
"나도 없지, 십 년 전 이면 10살 땐대, 그때 일기는 없고 난 중학교 2학년 때 일기부터 있어"
"그럼 우리 서른 살쯤 돼서 같이 십 년 전의 일기를 읽어보고 서로 얘기하면 기분이 어떨까!" 그 시절도 이미 한참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매일 하루를 정리하며 노트에 쓰던 일기는 세월이 흐르며 싸이월드란 홈피에,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지금은 인스타그램 에 종종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깜박하는 나이가 되어보니,
기록의 중요함과, 기록 안에 남아 있는 사람, 그리고 그때의 추억 감성들은 역사가 되고 모두 나를 살찌우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내 기억 속 상덕 오빠는 그저 '친했던 동네 오빠'로만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기록이 있었기에 그가 얼마나 숭고한 삶을 살았는지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매일매일 서툴게라도 오늘의 흔적을 남기는 진짜 이유다."
때론 어떤 날들의 기록들은 남편과 어떤 상황에 대해 우기며 언쟁을 할 때 빼박으로 증거로 내놓을 수 있기도 하다.
내 기록 속에는 참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지만, 추억 속에 꿈속에서 볼 수 있다. 기록이 없었다면 희미해졌을 나의 소중했던 인연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나의 기록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 나의 감성을 촉촉하게 해주는, 나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뿌리 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만의 역사를 기록하려 한다.
훗날 더 나이 든 내가 오늘의 기록을 보며 다시 한번 기분 좋게 미소 지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