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정신없이 기차며 버스를 타고 도시락을 사 먹으며 엄마의 혼을 빼놓았다. 돈 무서운 줄 아는 엄마는 좋은 식당도 싫다, 비싼 숙소도 싫다셨다. 도시락을 사서 공원에서 먹다 비가 와서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며 낄낄댔다. 뒤지고 뒤져 가성비 좋은 료칸을 찾아 예약하고 유카타를 입히고는 사진을 찍겠다며 번잡스럽게 굴었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와서는 가물가물 졸고 있는 엄마에게 밤늦도록 조잘조잘 말을 걸어댔다.
좋은 쇼핑몰은 구경도 싫다는 엄마를 100엔 샵으로 끌고 갔다. 머뭇거리며 들어간 곳에서 모두 다 천 원이라는 말에 점점 흥이 오른 엄마는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없던 미소된장과 일본간장도 사고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도 샀다. 일본에 와서 된장 간장만 이렇게 잔뜩 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또 낄낄댔다. "야, 이거 우리 다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무거운데." "몰라, 일단 엄마가 사고 싶은 만큼 다 사 봐. 어떻게 되겠지 뭐."
집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면 아쉽지. 부산항에 도착해서 주차해 놓은 차를 타고는 남편과 아빠한테 도착 전화를 하려던 순간, 거짓말처럼 우리 두 명의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 전원이 꺼져버렸다. 차에 있던 충전 케이블을 믿었으나 머리가 꺾여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왕초보 운전. 그 당시 살고 있던 울산 집까지 도착하는 동안 생사를 몇 번이나 오갔다. 집에 도착하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남편. 얼른 아버지께 전화부터 한다. "장인어른, 잘 도착했네요. 걱정 마세요."
알고 보니 연락이 되지 않는 우리를 걱정하던 아버지는 별 생각을 다 하던 끝에 출입국 사무소로, 부산항으로 수십 통의 전화를 하셨던 것. 금방이라도 안 살듯 싸워대던 엄마가 잘못됐을까 봐 지옥 같은 두 시간을 보내신 모양이었다. 시작부터 삐걱거린 여행은 아버지의 엄청난 잔소리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