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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여행 #1

엄마와 후코오카 여행기

by 숨 쉬는 돌



2010년,

내 생애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전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은 모두 내 의지대로 행해진 일이었다. 좋든 싫든 그것은 내 선택이었으므로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하지만 인공수정을 세 번째 하고도 찾아오지 않는 아기천사를 기다리는 것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나의 의지가 아니었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마음을 놓아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마음을 놓지 못해서 이런 결과가 생기는 건가, 자책만 더할 뿐이었다.


나는 잠시라도 떠나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찔러대는 주삿바늘로부터. 새끼를 잉태하기 위해 날짜를 맞추는 일도 지긋지긋했다. 검사실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의사를 기다릴 때면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미쳐버리기 전에 떠나야만 했다.


"엄마, 나랑 여행 가자."

내가 가장 흔들리던 순간, 내가 평생 가장 의지하던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실 엄마는 그 손을 잡아줄 상황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부모님은 나의 결혼 후 경제적인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세컨드 하우스로 생각하고 준비하던 시골집으로 거처를 아예 옮기셔야 했고, 시골집을 공사하던 업체는 집을 다 마무리하기도 전에 잔금을 들고 도망쳐버렸다. 싱크대도 미처 달기 전인 주방으로 이사를 하던 날, 이사 업체는 모든 그릇을 바닥에 부려놓고는 도망치듯 떠나갔다. 전기도 수도도 아무것도 없는, 지붕과 바닥뿐인 집에 이사를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시공은 되었으나 잔금을 받지 못한 업체들이 와서 지붕도 뜯어가고 새시도 떼 갈까 봐 였다. 일단 사람이 살고 있으면 건드리지는 못한다는 말을 듣고는 막무가내로 이사는 했으나 차 소리만 나면 지붕을 뜯으러 온 사람들일까 봐 겁을 먹고 숨어있던 날들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이른 정년을 맞은 아버지와 한순간에 삶의 방식이 바뀐 엄마는 매일같이 으르렁댔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서로를 할퀴고 스스로가 더 상처받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엄마와의 여행이 우리 둘 다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떠나는 날부터 엄마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행 갈 때니? 너는 어떻고? 여행비용은 얼마야? (그럴 돈 있으면 날 주지...)"

엄마의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였다. 철없는 딸이 이럴 때 여행을 가자고 해서 기가 찼을 것이다. 엄마 말대로 먹고 죽을래도 없던 그놈의 돈, 좀 보태줘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기어이 후쿠오카행 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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