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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놔두고 어딜 가?

엄마 아닌 '나'의 여행 #1

by 숨 쉬는 돌


크로아티아 정보는 없는 크로아티아 여행기





2017년 봄.

마침 우리 부부의 결혼 십 주년이었다. 남편의 학회가 있다는 구실도 있었다. 친정부모님은 흔쾌히 아이들을 봐주겠다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나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떠날 수 없는 이유 역시 수백 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는 지쳐있었다. 시험관 시술로 힘겹게 얻은 아이였지만 오래 기다렸다고 해서 육아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쪽쪽 빨아먹고 싶게 예쁜 존재일 때가 더 많고, 치사량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아이들이었지만 나의 인성 밑바닥까지 파헤치게 만드는 존재 또한 그들이었다. 아이들을 피해 숨어든 방구석에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내가 이 정도로 미친 건가, 싶은 날도 있었다.



드디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 나는 정말 기뻤나 보다. 나 정말 혼자인 거 맞아? 진짜 출발하는 거야? 캐리어의 무게가 꽤 되었는데도 나의 두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이들 간식이며 여벌 옷을 챙겨 다니던 커다란 에코백 대신에 작은 핸드백을 맨 내 모습이 영 어색했다. 그렇지만 곧 익숙하게 혼자의 시간을 즐겼다.


탑승 전부터 예약해 둔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으려니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부모들이 참 힘들겠다. 장거리인데 안쓰러워서 어쩌나? 어머나, 그런데 나는 오늘 혼자네. 이어폰도 끼어보고 가지고 온 책도 괜히 들춰본다. 바람이 불지 않는 비행기 안 인데도 자유의 향기가 솔솔 나는 듯하다.


곧 비행기가 이륙하고 기내식이 서비스된다. 맙소사, 이게 다 내 거야? 안 먹는 아이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보겠다고 싸우는 동안 다 식어빠진 내 식사를, 그나마도 급하게 쑤셔 넣던 내가 아니다. 여유 있게 커피도 한 잔, 괜히 빵에 쨈을 발라도 보고 그냥도 먹어본다. 그리고는 남이 밥상을 치워주니 이렇게나 좋구나, 킥킥대며 모니터의 영화를 뒤적였다. 그래, 너로 정했다. 화면 속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멈칫한다. 왜 아무도 나를 안 찾지? 왜 내 팔을 잡아끄는 사람이 없지? 아 맞다, 나는 떠나왔구나.


문득 시계를 보니 한국은 저녁 9시. 아이들이 엄마 없이 처음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또르륵 한 방울로 시작된 눈물이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내렸다. 엄마 없이 얼마나 힘든 밤을 보내고 있으려나. 또 그 기나긴 울음을 받아내고 있는 친정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비행기의 다른 엄마들은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듬고 있건만, 나는 내 새끼들을 버리고(?) 왔지.


한 시간 남짓을 미친 여자처럼 울다 보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영화 필름처럼 스르륵 흘러간다. 오지 않던 아기천사를 기다리던 시간, 처음으로 임신 확인을 받고 병원 앞에서 엉엉 울어 지나가던 사람이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막 태어나 응애응애 우는 아이를 남편이 보듬으며 '리우야, 아빠 여기 있어. 울지 마.' 했더니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쳐 너무나 신기했었지. 그때도 나의 엄마는 병실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아기가 안 울어서 마음이 철렁하셨다고 했다. 마침 옆 산모가 난산을 하다가 응급실로 실려가는 참이라서.


그래,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항상 둘러보면 엄마가 있었다. 언제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별 일 아니라는 듯. 그 표정에서 나는 많은 위안을 얻었는데 나중에 엄마 친구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그럴 때마다 엄마도 뒤에서 많이 우셨다고. 가슴이 미어지고 무너져내려도 자식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던 엄마인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못 되어줄 것 같다.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들에게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도 힘들어!' 하며 악을 쓰던 내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아이에서 시작되어 엄마에 이르는 대서사시를 쓰고 나서야 눈물이 사그라들었다. 목이 아프도록 울음을 참았지만 훌쩍대는 소리가 분명 옆사람에게 들렸을 텐데. 미안하고 창피하다. 어쩌겠어요. 비행기에서 우는 다 큰 여자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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