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스토케에서 방 구하기

엄마 아닌 '나'의 여행 #5

by 숨 쉬는 돌


크로아티아 정보는 없는 크로아티아 여행기



여행은 떠돌이의 삶을 잠시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에도 온전한 내 집은 없다. 하지만 내 공간이 침대 하나일 뿐이라 해도 그곳은 나의 집이 된다.


스무살 무렵 친구와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에서 우리는 정말 가난한 여행자였다. 원래도 빡빡하게 잡은 예산 안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돌발상황들은 우리의 여행을 더욱 지난하게 만들었다.


큰 맘 먹고 들어간 빵집에서 샀던 가장 크고 쌌던 빵. 우리나라처럼 진열된 것을 직접 담는게 아니라 진열대 유리너머로 주인아저씨께 '저거 하나 주세요'해서 건네받은 빵은 너무나 딱딱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주방의 칼과 모든 조리기구를 사용해봤지만 그것을 자를 수는 없었다. 얼마를 낑낑댔을까, 우리는 빵을 포기했다. 눈 앞에 있는 빵을 못먹으니 더욱 배가 고팠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야, 나 열받게 하지 마라. 나한테 무기 있다. 이거 던지면 최소 사망이야."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던 스무 살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유럽에서 차 렌트라니. 감개가 무량했다. 8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그때를 떠올렸다. 나이에 따라서 이렇게 여행이 달라지는구나. 앞으로 나의 여행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플리트비체 근처의 작은 시골마을인 라스토케는 내가 좋아하는 웹툰작가가 다녀온 곳이라 눈여겨 봤던 곳이다.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흘러 물소리에 잠을 깬다는 그 곳. 문명과는 좀 동떨어진 곳이라 미리 예약을 하기가 힘들다기에 일단 무대포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미리 렌트를 알아보지 않은 남편 탓은 이제 그만해야겠지. 작은 마을인지라 이미 어두워진 늦은 시간에 남아있는 숙소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하나 남아있던 곳은 주방도 없고 청소 전이었다. 앞 손님이 언제 나갔길래 여태 청소를 안하신 건가요?


트렁크의 음식재료들을 사용하려면 작더라도 주방이 있는 방을 구해야 했다. 차라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방을 못구하면 음식은 포기하고 차에서 자면 되지 뭐, 크로아티아에서 차박한 사람 한 번 되어 보자. 노숙이 아닌게 어디야. 그정도까지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려던 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불꺼진 숙소를 두드려보았다.


방이 3개 뿐인 조그만 숙소. 다른 손님도 없이 주인 아주머니 혼자만 계셨다. 영어를 못하는 아주머니는 우리를 가만히 살피더니 종이에 숙박비를 적어 보여주셨다. 손짓 발짓으로 주방을 좀 사용할 수 있는지 여쭤보았는데 제대로 의사소통이 된건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돈을 건네고 서둘러 짐을 옮기고 나서 다시 숙소를 둘러보았다. 소박한 주방 한 켠에는 가족들인 듯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남편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냄비에 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가스렌지가 켜지질 않는다. 몇 번이고 레버를 돌리고 있는데 홀연히 나타난 아주머니, 옆에 있던 라이터로 불씨를 살려주자 렌지에 불이 붙는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늦은 저녁 준비를 하는데 뭔가 찜찜하다.


마을의 숙소가 다 가득 찼는데 왜 여기만 텅텅 비어있을까? 겁이 많은 나는 상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으로 이미 한 편의 호러 무비를 찍었다. 작은 마을에 비어있던 숙소, 빛바랜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어두운 조명의 주방에서 칼을 들고 있던 주인공... 낯선 그림자가 주방으로 쑥 들어온다... 꺅! 남편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