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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Jun 18. 2022

우리는 부부싸움 중입니다

결혼기념일에 싸우는 이야기


곧 결혼기념일이다.

열다섯 번째다.


우리는 부부싸움 중이다.




결혼을 하며 지방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자연스레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아줌마가 되었다.

나름 새침하던 아가씨가 아줌마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아이를 낳을 때는 병원에서 마치 동물이 된 것 같고

육아를 하는 동안 내 인성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한쪽 마스카라밖에 못하고 하루를 보냈다는

직장인 친구들의 고단함도 가끔은 부럽게 느껴다.


나는 사실 결혼 전의 회사생활이 버거웠다.

성취감은 전혀 없는, 견디는 날들뿐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최대한 집에는 덜 신경 쓰도록 배려했다.

그 험한 곳에서 견디는 것이 미안하고 안쓰러웠으므로.


혼 후 남편은 못다 한 공부를 하고 싶다 했다.

회사를 다니며 박사과정을 해내는 고단한 남편을

나는 응원하고 지지했다.

성실히 논문을 써낸 남편이 졸업하는 날,

내가 해낸 일인 양 기쁘고 뿌듯했다.


남편은 이직을 생각했다.

월급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라 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심사숙고 끝에 자신이 원하던 일을 뒤로하고

연봉이 높은 회사를 선택했다. 아마도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은 골프를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상황이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나중으로 미루자고.

남편은 결국 시작했

우리는 싸웠다.


아이들은 자라났다.

이번에는 내가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은 너의 길을 응원한다 했다. 러나 안일이 낯선 남편은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작은 일들이 삐걱다.


십오 년을 한결같이 새벽길을 나서는 남편은 억울할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중에도

변함없이 자상하고 좋은 아빠이자 가장이었으므로.


나로 말하자면

이제 좀 쓸쓸해졌다.

가족을 보듬고 챙기던 손길이 더는 필요 없어졌을뿐더러

가끔은 그것이 '과한 잔소리'로 여겨지게 되면서.

남편이 열심히 달려갈 때

나도 같이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오로지 남편의 길이었다.

이제 너의 길을 찾아가라, 는데 둘러보니 깜깜하다.

모두들 자신의 길 위에 서 있는데

나만 길 아닌 곳에 멀뚱히 서 있는 느낌. 




언제나 다정히 나의 의견을 물어보던 남편이 원했던 건

<반대하지 않는 응원과 지지>

멈추어 있는 나에게 남편 분명 따뜻한 마음으로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너의 길을 찾아봐>

내가 화를 위해 제적인 도움을 바랄 때 그는 단지

<재의 안정된 루틴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이었을 뿐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나 역시 당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므로

원망의 마음도 아닌데

당신을 마주 보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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