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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골을 왜 샀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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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돌
Jun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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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유럽을 (나와 함께 거지꼴로) 누볐던 이십 대의 친구는 이제
첼로를 취미로 즐기는 멋진 사십 대가 되었다.
(친구의 나이는 밝혔으나 내 나이는 비밀로 하자.)
그런 친구와 차를 운전해서 타고 이천에 갔다.
차를 운전했다, 는 것은 나에게는 좀 특별한 의미이다.
내가 그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의 절반쯤은
십 대의 언저리에 언제나 머물러 있으므로.
능숙하게 차를 운전해서 원하는 곳에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른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봐도 봐도 늘 낯설게 느껴진다.
이천의 도자기 마을인 <예's park>는 참 좋았다.
여전히 예전처럼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며 친구와 걷다가
오르골 가게에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내 소비의 대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선별해서 사고
나머지는 미뤄두다가 포기하기도 하는.
팍팍하기는 했지만 구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현명하고 바람직한 소비였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오르골을 샀다.
오르골을 사는 것이 뭐가 대수냐, 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이 들으면 조금은 의아할 일이다.
"네가? 그 돈을 주고?"
하지만 나는 친구 것까지 두 개를 샀다.(자랑이다)
작지만 고운 소리가 나는, 딱히 쓸모는 없는 물건을 사면서
행복했다.
내가 어제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쨀까 말까를 고민하던 고등학생이
어느덧 운전이라는 어른의 세계에 훅 들어온 것처럼
낯선 느낌이었다.
어른이 되었다, 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나이가 되었다.
이미 어른이 되고도 남아야 하는 나이인데도
아직 서투르고 어설프다.
그래도 오르골을 산 오늘은
나 쫌 어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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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덜 민폐를 끼치는 하루를 보내고 싶은 / 나이가 들어서도 느리고 가난한 여행을 꿈꾸는 / 길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 그리고 서투른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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