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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Dec 05. 2022

왜 세부인가

사실 별 이유 없다



2006년, 나는 첫 직장에서 일 년 만에 퇴직을 했다.

쉽지 않게 발버둥 쳐 들어간 회사였으나

그만 둘 이유는 수십 가지였다.

또 한 번의 도망을 준비하던 나는 퇴직금을 들고

가장 오래 집을 떠나 있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인도는 비행기 값이 너무 비쌌고,

일본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끌리지 않았고

거지같이 다녀온 유럽 배낭여행을 다시 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여러 가지 핑계로, 나는 세부로 갔다.

어학연수라는 거창한 닉네임이 따라붙으니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부모님은 나의 역마살을 이미 어느 정도 인정하셨던 것 같다.)




회사에서 사람과 일에 치여 몸과 마음이 혹사당했던 나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수업 듣고 밥 먹고 휴식하는 동안

서서히 치유되었다.


내가 철없이 내 몸뚱아리 하나 편히 지낼 그때

같은 어학원에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가 한 분 계셨다.

초등학생 자녀가 둘이었다.

아이들을 수업에 보내 놓고 엄마도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보기 좋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애 엄마가 굳이 영어를 배우나?라는

전근대적인 고리타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그리고 지금

나는 아들 둘의 엄마이다.

첫째가 5학년, 둘째는 2학년

천지분간 못하던 두 아이의 육아를 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다가 문득 멈추어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내 키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내년이면 첫째가 중학생 갈 준비를 하게 된다.

이제 곧 부모와의 여행보다 더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생기겠지.

그러기 전에 치열할 학업 경쟁에서 벗어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학연수라는 거창한 닉네임이 따라붙으니

남편을 설득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역마살을 누르고 살아온 내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확실한 보상으로 가장 가까이 지내는 언니를

오랜 시간 공들여 꼬셨다.

언니의 아들들도 5학년, 2학년이다.

엄마는 엄마끼리, 형은 형끼리, 동생은 동생끼리

우리는 죽이 잘 맞는 세 쌍의 좋은 친구이다.

함께 육아했고 함께 뛰어놀고 함께 성장해왔다.

서로가 없었다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훨씬 지루하고 팍팍했을 것이다.


이로써 멤버는 6명이 되었는가 하면

아니다.

내 조카도 5학년 남자아이다.

새언니는 직장인이라 함께하지는 못하고

아이만 나(고모)를 따라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나, 나의 1호기, 나의 2호기, 나의 조카

언니, 언니의 1호기, 언니의 2호기

7명이 대단합하여 2022년 12월 말 출발할

세부원정대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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