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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Apr 09. 2022

글 한 시간에 만 원

당신은 어쩔 수 없이 글쟁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남편의 돈을 벌어보려고 한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글을 쓰면 생활비에서 만 원을 내 통장으로 이체하는 것이다. (남편은 주부도 자신만의 용돈을 가져야 한다고 먼저 말해주는 좋은 사람이다.)

어차피 남편의 월급이고 내가 관리하는 우리 집의 생활비,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이렇게라도 해서 글을 써보려는 의지를 다지는 중이다.


글을 쓰는 것이 좀 두려웠다. 누가 읽을 거라고 나는 굳이 흔적을 남기는가. 내가 가진 이 정도의 누구나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재능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러워하는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재능이란 다른 사람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가정,
그런 생각이야 말로
자신의 발전을 저해한다.

-하버드 글쓰기 강의, 바버라 베이크-



'한 시간 글 써서 만 원 벌기'에 대한 생각은 몇 달 전부터 있었으나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핑계들도 동반되었다. 문장이 내 주변을 동동 떠 다니는 느낌에 행복한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그걸 배출하려는 의지는 박약한 아마추어 글쟁이.




중학교 1학년 때 단편 소설을 써서 입상이 된 적이 있었다. 제법 큰 기관의 대회여서 입상한 학생들에게는 [문예 프]라는 특권이 주어졌다. 3박 4일의 캠프 동안 많은 소설가, 시인 등의 멘토가 방문하여 강의를 해 주었고, 몇 편의 글을 더 써내어 선발 몇몇에게는 순위별로 더 큰 상금이 주어졌다.


나는 그 캠프의 최연소자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나에게 강의는 어렵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토론하는 멋진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나도 뭔가 된 것 마냥 으스대는 기분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선명하다. 제대로 글을 쓰기도 전에 겉멋부터 들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다른 것은 거의 잊었지만 구효서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쩔 수 없이 글쟁이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 않으면 아픈 것처럼. 여러분은 아마도 그런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일 겁니다. 나도 그랬거든요." 그때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맞아, 나는 평생 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게 되겠구나.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했을까?)


결국 나는 글 쓰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그 후 책과 관련은 있는 몇 가지 직업을 거친 후, 평범한(글을 쓰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가끔은 머릿속이 타자기처럼 움직여 글을 쏟아내곤 했다. 그것들은 구름과도 같아서 순간에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붙잡을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사라져 간 문장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 그것들을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쟁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애써 무시하고 살아간 지 이 십여 년 만에.

그리고 브런치를 만났다.

작가가 뭔지 모르고 신청했고, 발행이 뭔지 모르고 해 봤는데 라이킷을 받았다. 이게 뭐지, 얼떨떨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아직도 첫 발행은 못했을 것이다.


과거의 그 예언이 맞다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다.

아직도 두렵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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