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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의미

앨범을 만들자

by 숨 쉬는 돌


여행을 다녀오면 꼭 앨범을 만든다.

힘들면서도 짜릿하게 즐겁고

체력이 바닥나면서도 아드레날린이 뿜뿜 터져 나오던 여행의 마지막 의식이랄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수도 없이 들락거린 그 나라에서 비로소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이 앨범의 묘미는 몇 년 후부터가 진짜이다. 생생한 순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한 감정으로만 남게 되는데, 그때 앨범을 뒤적여보면 다시 타임워프 된 듯 그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무리 어렸을 때의 여행이라도 사진을 보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나 보다. 다른 에피소드는 잊어버려도 사진에 남아있는 장면은 거짓말처럼 기억한다. 심지어 작은아이는 4살 때 베트남 여행의 장면을 기억한다고 한다.




쿠킹클래스 전 바구니 배를 타고 게를 잡아보는 체험을 했었는데, 아빠와 형아팀은 게를 두어 마리 잡고 나와 둘째 팀은 허탕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나 서러웠는지 배에서 내리는 순간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께서 아기가 왜 우냐시길래 게를 못 잡아 그렇다며 웃었더니 잠시 후 어디선가 게를 한 마리 잡아오셨다. 다른 손에는 막대기와 그물 끈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철퍽 앉아 아기를 위한 게 장난감을 만들어주셨다. 끈의 한쪽 끝에 게를 묶고 반대편 쪽에는 막대기 끝을 묶어서 아이 손이 물리지 않고도 게를 가지고 놀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아이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박꽃처럼 웃었다.


남편과 나는 그 장면이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스러워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때가 떠올라 미소가 번진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의 순간이다. 말은 안 통해도 서로 마음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간들. 그 장면은 우리 마음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남아서 앨범에 고이 모셔두었다. 아이는 사진을 보고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따뜻한 베트남 시골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대해서.

너무 어릴 때의 이야기라서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그저 엄마 아빠에게 전해 듣는 에피소드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사진을 통해 그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감사한 일이다.




사진을 찍고 공유하기 너무나 쉬워진 요즘, 굳이 앨범까지 만들 필요 있겠냐 싶을 수도 있다. 지만 잘 정리된 앨범을 온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킥킥거리며 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본전을 완전히 뽑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 가지 팁을 말하자면, 앨범의 크기는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표지도 두께도 다른 앨범이지만 한 가지 사이즈로 제작하면 보기도 좋고 보관하기에도 편리하다. 예쁘게 장식해 놓으면 우리 가족의 작은 전시회가 되기도 한다. 참고로 나는 앨범을 제작하는 회사도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우리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과 여행을 가면 그들의 앨범도 만들어 선물한다. 여행지에서 사 온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좋은 선물이 된다. 나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그 앨범을 받을 때까지 설레며 기다리기도 한다.

사실 우리 가족 앨범 만드는 것만 해도 좀 귀찮은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앨범까지 만드는 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앨범을 선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앨범을 아끼며 두고두고 꺼내어 본다. 사진 몇 장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여행의 시간과 추억을 선물한 것이다.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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