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의 '작업실'

물질과 노동 그리고 한 개인의 은밀한 취향과 삶이 있는 방

by 홍지수


내가 미술관이나 갤러리만큼이나 자주 가는 곳은 작가들의 '작업실'이다. 나는 작가나 기관, 갤러리 등으로부터 평론을 의뢰받을 때 전시, 작품뿐 아니라 작업실을 보지 않고선 웬만해선 글을 쓰 않는다. 매체 불문 작가들의 작업실에는 그들의 취향, 삶, 생각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곳은 꾸미거나 위장할 수 없는 장대한 역사와 시간, 행위가 녹아들어 있다. 절대 누가 온다 해서 거짓으로 내 것인 양 할 수도, 내 것이 아닌 양 부인할 수도 없는 곳이다. 내가 굳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작가들의 작업실에 들어가 미발표작들, 진행 중인 작업들, 작가가 채 의식하지 못하고 공간에 들인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글을 쓰려는 이유다. 작업실에 가서 작가가 들여다 놓은 사소한 물건, 솔방울, LP, 수집품 등등을 살펴보노라면 작가가 어제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작업을 풀어나갈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작가가 창작의 영역을 진척시킬 생각인지 대략 유추가 된다. 또한 테이블이나 선반, 기계 등이 놓인 형태를 보아도 작가가 평소 어떻게 작업하고, 움직이고, 쉬는 지도 대략 머리에 그려진다. 이는 내가 학교 졸업 후 아주 잠시였지만. 작가로 작업하며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업은 의도하든 하지 않든 작가의 생각과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품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취향과 삶의 면면이 드러난 곳에서 작가가 매일 치열하게 작업한 형태와 색, 질감, 형식을 보고 작가의 생각과 이력 등의 면면을 타인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특히 공예가들은 어느 예술가보다 재료. 도구와 긴 시간 작업실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한 몸 되어 살기에 그러한 면이 더 크고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공예가들의 작업장에는 오직 작가의 성정과 창작에 필요하고 절실하게 맞닿아있는 것만 들어와 오래 살 수 있다.


공예가들의 작업장은 집이자 노동의 현장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곳은 생의 터전이자 창작이 태동하는 장이다. 공예가들은 작업장에서 삶과 일을 영위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삶과 일이 한 공간 속에서 뒤엉켜 공존하는 공예가들의 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반복된다. 직장인들과 달리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구분 없는 공예가들의 일터는 매혹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잘못된 것이다. 공예가들은 자신이 정한 자율과 의지에 따라 일해야 하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와 일정한 소득을 확신하기 어렵다. 공예가들의 삶은 오랜 숙련과정 속에서 막연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삶과 작업 과정에 발생하는 온갖 난관에 맞서 공예품을 만들며 오직 자율적 창작욕구와 만족, 제조자로서 보람에 의지해 살아가는 삶이다.

그렇다면 공예가는 작업장에서 어떻게 일하는가? 공예가들의 일상과 일이 지난하고 반복적이기만 한가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예가의 작업장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수시로 동시다발 발생한다. 공예가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미션과 수시로 맞닥트린다. 갑자기 쓰던 재료의 수급이 중단되어 새 재료를 구해야 하거나, 갑자기 날이 더워져 만들어 쓰던 접착재의 성분을 달리 혹은 수일 더 묵혀 사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재료를 망치기도 하고 여러 재료와 공정의 순서를 바꿔 적용하며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방법을 터득하며 자신만의 방법과 기술을 체득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작업자는 ‘장인(匠人)’이 되어 간다.


공예공방은 작가들이 재료와 대화하고 씨름하며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터전, 보루, 진두 기지 같은 곳.


공예가들의 작업장은 공예가들이 물질과 도구와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흔적들로 육중하다.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특성을 하염없이 파고 들어가 자신이 체득할 수 있는 최선의 기량과 지식을 동원해 사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바닥과 테이블, 의자, 벽에 재료에서 일탈한 존재들이 수북이 쌓여가고 도구와 기계에 난 거친 자국들과 검은 기름때, 흙물 자국들이 뭉근하게 뒤엉키며 특유의 작업실 풍경을 만든다. 톱밥, 흙먼지, 실밥, 금속 파편들이 작업장의 곳곳에 수북이 쌓여 갈수록 그들은 공예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 작업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적막과 노동으로 가득한 공간 곳곳에 인간의 손과 도구가 하염없이 물질에서 떨구어 낸 살들이 수북이 쌓이고 펼쳐질수록 유용한 사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예가들은 한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그리고 선택한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면서 자신이 보고 싶은 색과 무늬, 질감 그리고 형태를 갈구한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재료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작업장 내 모든 기물의 배치와 운용 기준은 오로지 작업이다. 재료를 보관하고 준비할 곳, 재료를 성형 및 건조해야 할 곳, 물을 사용해야 할 곳과 불을 사용해야 할 곳이 엄밀히 작업의 공정과 작업자의 동선에 따라 구획되고 도열한다. 작업대 주변에는 손과 물질에 의해 닳고 반질해진 많은 도구들이 공예가가 손을 뻗으면 언제나 잡힐 자리에서 마치 무기처럼 도열해 있다. 원래의 형체를 알 수 없이 변형된 도구들이 공예가의 손에서 물질과 씨름하며 현란하고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풍경은 언제나 신기하고 경이롭다. 공예가들은 자신의 손과 도구가 물질과 조우하며 만들어내는 독자적 표정과 형태를 탐닉하되 기능을 끊임없이 염두에 두며 움직인다. 물질이 외부의 힘에 반응하는 질감과 형태를 끊임없이 목도하고 감지하면서 그 속에서 재료만이 뱉어낼 수 있는 빛나는 아름다움을 끄집어낸다.



공예가들은 공방 특유의 냄새가 가득한 작업실에 앉아 자신의 몸이 물질에 행하고 물질이 내준 수많은 변화를 목도한다. 타인의 눈에는 매일 같은 공간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동일한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 같은 공정을 반복하는 일이 단조롭고 지난하게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공예가들은 반복의 노동 속에서도 자신의 손끝에서 물질이 매번 다르게 반응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목도한다. 반복 속에서 차이를 찾고 변화를 목도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이것이 공예가가 고단한 노동과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내고 지속하는 이유다. 공예가의 작업장은 물질과 도구를 사용하고 매만진 자들이 몸의 고단함과 욕망을 참아가며 인내하는 방이자 인간의 삶과 노동이 물질과 만나 삶의 유용할 사물로 새롭게 태어나는 창조의 장이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글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공예공방|공예가 되기까지>의 도록에 실렸던 글을 바탕으로 2022년 다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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