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최적화된 제각각의 연장으로 물질을 주무르고 더듬고 매만지면서 산다.그것을 자기 몸 쓰는 것마냥 손아귀에 쥐고 자신이 지향하고 옳다고 믿는 모종의 경지로 물질과 몸을 육박해 나간다. 누구는 나무를, 누구는 흙을, 누군가는 금속을, 누군가는 실을 한평생 다루며 산다. 기량이 느는 만큼 공예가도 그리고 도구도 함께 늙어간다.
도구의 변형은 그 도구들과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 공예가의 노동을 가늠하게 해주는 증표이다. 도구 역시 공예가들이 만든 물건 못지않게 공예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도구를 보면 작가와 작품을 짐작할 수 있다. 닳은 자리, 형태에서 작가의 몸과 행위, 사간을 가능할 수 있다.
공예가의 도구는 신체의 연장(延長)이다. 공예가들은 훌륭한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서 손을 비롯한 신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예의 행위는 대부분 운동에너지에 의존하며 신체의 동작과 힘을 변경하고 조절함으로써 형태를 만든다. 즉 운동방향의 변경과 힘의 전달이 핵심이다. 손을 비롯한 인체를 사용한 제작방식이 공예가의 의지를 재료에 직접 개입시키는 것이라면 도구는 인체가 움직이는 힘의 방향, 속도, 강도를 극대화시킨다. 도구는 일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손이 하지 못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손과 신체뿐 아니라 도구를 재료와 작업의 목적에 알맞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능숙하게 사용하느냐는 공예 기술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공예가들은 자신이 다루는 재료, 기술, 체형에 맞게 직접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곤 한다. 공예가의 도구는 매체와 작업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나무, 금속, 섬유, 고무 등 작은 손도구부터 물레나 베틀 같은 제법 덩치가 큰 도구까지 다종 다양하다. 공정이 복잡하고 세밀함을 요할수록 많은 도구가 동원된다. 같은 모양이라도 크기와 재질이 다르면 다른 효과를 내기에 적재적소 적시(適材適所適時)에 도구를 사용하는 것 또한 공예가의 노하우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 몸의 역량을 높이고 재료에 손이 할 수 없는 독특한 사물의 질감을 남긴다.
공예가가 다양한 재질과 크기의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재료에 고유의 흔적이 남고 이 흔적은 공예품의 독특한 정체성이 된다. 따라서 공예품을 살펴 어떤 재질을 무슨 도구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역 추적하는 것은 공예품의 태생을 가늠하고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금속기는 공정의 흔적이 곧 정체성이자 품질이 되는 좋은 예다. 유기 제조방식은 크게 방자(方字)와 주물(鑄物), 반방자(半方字)가 있다. 쇠를 녹이고 형틀을 짜서 쇳물을 부어 형태를 만드는 주물 유기와는 달리 방짜유기는 먼저 구리와 주석을 78:22 비율로 합금해 녹인 엿물로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 원형(바둑 또는 바데기)을 만든 후, 이것을 여러 명이 함께 수천 번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려 만든다. 표면이 매끄러운 주물 제품과 달리 방짜유기에는 메자국이 발생한다. 망치를 내리치고 정으로 받아야만 생성되는 정직한 노동의 흔적이다. 작업자마다 강도와 속도가 조금씩 다르기에 메자국은 작업자를 구분하는 표식이 된다. 유기장이 몸과 도구를 밀착하여 물질과 치열하게 사투하며 만들어낸 균질한 메자국은 방짜 유기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독특한 미감이다.
공예품의 미감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작업자의 의지나 행동이 결여된 도구는 그저 사물에 불과하다. 도구는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역할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가 일에 투입되는 순간 본연의 기능을 행한다. 도구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족적, 자립적 사물이 아니며, 오직 독립적이고 자족적으로 기능하는 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사용하는 보조적 사물일 뿐이다. 따라서 도구를 움직이고 기능하는 의미 있는 물건으로 만들기 위해선 언제나 조작하고 움직여줄 외부의 힘, 즉, 공예가의 손이 필요하다.
도구는 작가와 한 몸으로 움직여 작업의 능률을 높인다. 도구는 작업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읽는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신체와 직접 접촉하고 힘을 배가시키는 도구의 특성 때문에 세월이 오래 묵은 도구일수록 공예가의 신체적 특징과 작업의 습관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도구는 공예가들과 함께 늙어간다. 공예가가 오랜 세월 반복을 통해 재료를 다루는 지식과 기술을 몸 깊숙이 각인시키듯 도구 역시 공예가의 신체와 행위에 맞춰 깎이고 닳아 공예가의 손과 재료, 작업 공정에 최적화된다. 그래서 공예가들은 묵은 도구를 잘 버리지 않고 선대 혹은 선배의 재료를 물려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공예가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작업자의 손과 작업에 최적화된 ‘길이 든 도구’는 능숙한 공예가의 손에서 최상의 품질을 가능케 하는 일등공신이다. 공예가의 도구는 인체에 꼭 맞게 변형하며 신체의 움직임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공예가의 또 다른 분신이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글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공예공방|공예가 되기까지>의 도록에 실렸던 글을 바탕으로 2022년 다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