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들은 무엇을 만들던지 자연의 물리적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료의 본성을 따라야 한다. 중력을 거스르거나 시간에 역행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공예가들이 항상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연재를 공예재로 바꾸고 기능하는 사물로 변화시키는 공예 기술의 중심에는 인간의 손(手)이 있다. 손기술은 단순히 실제로 물질을 다룰 줄 아는 기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손기술은 물질적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구체적 사물로 존재하게 하는 공예의 근본적 속성이자 공예의 기본 개념을 이루는 바탕이다. 이것은 공예품을 산업생산시스템 하에 대량 생산하는 디자인 제품들과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공예 재료는 작가의 생각, 행동 그리고 긴 시간을 자기만의 방식과 흔적으로 고스란히 기억한다. ⓒ 사진: 이종민
공예가의 손은 언제나 '유일한 사물'을 지향한다. 손은 기계와 달리 자연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고 개별적으로 다룬다. 공예가의 손은 재료의 저항과 변수에 맞서는 대신 순응하고 조절한다. 공예가에게 재료의 다름과 차이는 일종의 저항이다. 기계에게 저항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공예가에게 저항은 최소화하고 적응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할 대상이다. 수작이 재료의 다름과 차이를 사물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정하고 유일함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기계 생산은 재료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생산체제는 기계를 통해 자본과 재화를 최소화하고 다량 동종의 제품을 생산하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18세기 이후 자본주의 체제 내 노동 편성은 연속 진행 공정을 기반으로 인간의 노동을 미숙련 노동으로 치부하고 인간과 달리 쉼이 없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기계 중심의 생산체계로 재조직화되었다. 현대 산업의 생산체계 속에서 기계성(mechanicalness)은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지적한 대로 원본과 차이 없는 대량 복제물을 양산한다. 기계 생산품에 속에 담긴 프로크루스테스적인 획일주의는 인간의 잠재력과 감성을 훼손함은 물론 무능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종당 기계 생산의 획일성을 소비하고 강요받는 인간의 운명은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에 누운 채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수공예품의 전통적 현시와 기계 생산품의 현시는 전혀 속성이 다르다. 이것이 우리가 사물의 태생 즉, 수공 생산과 기계 생산의 차이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다.
습관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맞춰 말을 걸고 성질을 다독이는 '손'
공예품의 제작과정에서 손과 손도구가 재료의 표면에 남긴 수많은 그리고 유일한 흔적들은 사용자의 경험을 유일성과 개별성으로 이끌어준다. 제작과정에서 공예가의 손과 도구는 재료에 불규칙한 그리고 독특한 흔적을 남긴다. 특히 공예품에는 공예가의 신체성과 공정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로 도예가 손으로 기물을 만드는 것(Hand building)과 물레를 사용해 기물을 만드는 것(Wheel Throwing)은 전혀 다르다. 손성형은 손가락 사이에 흙을 끼고 일정한 압력과 깊이로 흙을 누르는 동시에 전진(前進)하며 형태를 만든다. 이때 흙의 가소성과 인덱스 Index)적 속성 때문에 도예가의 지문과 행위의 궤적, 도구의 흔적이 흙에 그대로 남는다. 손자국은 도구와 달리 뭉툭하고 비연속적 자국을 만든다. 반면 물레로 기를 만들면 물레 특유의 독특한 회전선이 남는다. 물레의 속도에 따라 손가락이 흙의 피부를 빠르게 훑어 낸 규칙적인 선이 바닥부터 입구까지 얇은 기벽을 올라타고 휘감아 돈다. 물레작업은 도구를 통해 회전력을 극대화시켜 손에 비해 동종의 기물을 반복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도예가의 손으로 만든 동종동형(同種同形)의 기물은 미세한 ‘다름’을 이야기한다. 수작(手作)의 ‘다름’과 ‘차이’는 재료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계와 달리 인간이 쉼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작가들의 수작은 재료와 만나 사물에 고유의 결과 흔적을 만든다. 그것이 공예 사물의 독특한 미감(美感)이 되고 개성이 된다.
미숙함과는 엄연히 다른 수작의 ‘다름’과 ‘차이’는 기계 생산이 인간에게 줄 수 없는 유일성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공예가는 일은 전자기기와 디지털 그리고 물질과 재화가 모든 것을 장악한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아날로그 가치들을 지키고 만든다. 기계 생산으로 만든 물건이 무제한성으로 조장하는 끝없는 소비와 물건의 소중함을 망각하게 한다면 인간의 숙련된 손(technical manual skill)으로 만든 공예품은 우리가 물질과 편리의 추구 속에서 잃어버린 의미들을 상기시키고 회복시킬 수 있다. ■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글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공예공방|공예가 되기까지>의 도록에 실렸던 글을 바탕으로 2022년 다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