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전시 준비차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한 중견 도예가의 작업실에 갔다. 그와 마주 앉아 몇 마디 안부를 묻고 그가 내려주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받았다. 그가 건네주는 찻잔을 내 손으로 받아 든 순간 내 시선이 그의 뭉툭한 손에 멈췄다.
건장한 그의 몸에 비해 그리 크다 할 수는 없는 손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마디마디가 두툼하고 그 끝마다 단단히 굳은 인이 훈장처럼 배겨 있는 손이 영락없는 직능의 손이었다. 40년 흙 만진 자의 손이니 그야말로 시간과 물질이 만들어낸 손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반복적으로 흙을 촉감하고, 그것을 두드리고, 힘주어 도구를 잡고, 손끝으로 흙을 긁고 문지르는 모든 그릇 만드는 데 필요한 행위에 필요한 근육이 특화된 손 말이다. 경주마가 달리는 것 이외에 필요치 않은 근육과 뼈를 점차 퇴화시켜 자신의 몸을 달리는 행위에 맞게 진화해왔듯, 그의 손은 오로지 흙 작업에 필요한 운동감각과 근육운동, 손 솜씨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반복적 연습으로 휘몰아 획득한 몸이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행위가 체화된 몸과 그로 얻은 기술의 관계는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는 신비한 측면이 있다. 그렇게 한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하여 몸에 베인 기술과 행위는 흙 작업뿐 아니라 다른 재료를 다루는 일도 조화롭게 순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 변화하는 이치가 결국 하나의 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맥이 닿는 경험이다.
언제 어떤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하는 지 스스로 아는 놀라운 직감은 촉수와도 같은 민감한 손끝에서 나온다.
도예가는 온몸을 이용해 그릇을 빚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도예가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이자 도구는 손이다. 그들의 손은 항시 재료를 주무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늘 그것만을 생각한다. 잠시 작업을 놓고 쉬고 있을 때에도 도예가의 몸에는 흙 작업 중에 베인 습관, 감각, 행동 의지가 은연중에 실려 있다. 도예가는 손을 통해서 물질을 접촉하고 세상을 드러낸다. 일반인들이 손으로 세상과 접촉할 때,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후천적 지식과 진부한 지식에 근거하여 수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비해서 도예가는 예민한 손을 촉수 삼아 세상의 지식을 다시 새롭게 해석하고 자신의 재기와 기술을 동원해 그에 합당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도예가의 기술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숙달된다. 도예가가 그릇을 제대로 빚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손 감각을 예민하게 단련시키고 손, 손목, 팔, 어깨를 조화롭게 움직이고 힘을 주고 빼는 정확한 원리를 반복적으로 익혀 자신의 몸에 체화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처음에는 눈으로 쉴 새 없이 자신의 몸이 행하는 바를 지켜보고 조절하면서 행위를 통제한다. 이때 행동은 여전히 인식의 영향 아래 놓여있다. 하지만, 반복의 과정에서 몸의 은율을 체득하게 되면, 도예가 스스로도 손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어떤 과정으로 행했는지 일일이 헤아리지 않게 된다. 이것이 몸이 스스로 행하는 과정 즉, 신체의 행위와 감각이 인지영역을 넘어서 초감 각화 되는 단계다, 이렇게 체화된 동작과 은율은 작업을 보다 정밀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도예가가 지치지 않게 만들고 작업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놀라운 마력이 있다.
공예가가 자신의 재료를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을 알아가는 유일한 통로는 자신의 '몸'이다.
도예가가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몸의 은율을 체득하기까지는 우선 많은 작업량이 전제된다. 많은 작업량은 그만큼 새로운 시도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도예가는 분명 아직껏 맛보지 못한 성취,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그 무엇을 발견한 기쁨도 누리게 될 터... 그러나 이때 단지 흙으로 무언가를 그저 많이 만들기만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내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내가 흙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작가 스스로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예가는 깨어있는 지각 속에서 물질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몸으로 느끼고 한 발 앞서 물질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릇 한 점을 빚는 데 있어 재료를 대하고 과정을 행하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혹여 의미 없는 습관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문하고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도예가들의 작업은 자연에서 재료를 취하고 형태를 빚고 깎아내며 장식하는 모든 제작과정에서 부단한 반복적 행위를 전제로 한다. 도예가들은 자칫 지루하거나 노곤할 것만 같은 반복 행위 속에서 자신이 그 행위의 과정을 스스로 예측하고 조정하며 남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다름’을 내 것으로 취할 수 있다면, 도예가에게 일은 노동이 아니라 날마다 다른 새로움이자 즐거움이며 보람이다. 동시에 내가 그로 인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표이자 다음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나는 반복을 반복으로, 같음을 같음으로 인지하지 않고 오직 그 안에서 흙이 주는 그리고 흙을 가까이하는 즐거움을 자신의 삶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를 마주할 때마다 도예가가 지녀야 할 덕목 중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감각’과 ‘타고난 재기’가 아니라 ‘반복’과‘절대적인 작업량’을 감당하는 인내와 꾸준함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것은 기실 도예가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물질을 다루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무엇을 만들어내는 자-공예가들은 모두 그와 같은 몸, 손을 가졌다. 물질에 대한 이해와 실기를 습득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공예의 특성상, 가장 좋은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포착할 수 있는 공예가들의 감각은 하늘로부터 타고나는 것이 아닌 많은 작업량을 기꺼이 감당하는 자기 수련과 끊임없는 정신의 연마 속에서 키워지고 단련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단련된 자가 만든 물건에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합일로 이루어낸 깊은 미감이 실리게 마련이고, 그런 물건은 사용자에게 결코 문드러지지 않는 감각과 깊은 울림을 전달해 줄 것이 분명하다. 즐거운 반복으로 숙달된 공예가의 손짓은 재료에서 공간과 쓰임을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일을 수행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공예의 유용과 만족감이다. ■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
+ '소소 담화'는 미술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저자가 공예 현장을 다니며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바를 독자들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