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공예가'?

창조적 놀이로 인간과 삶을 바꾸는 호모 루덴스.

by 홍지수


공예가는 물건을 만드는 자다. 그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닌 인간의 소소한 나날과 동반하는 물리적이고 실제적 사물을 만든다. 공예품은 재미, 소유욕, 과시욕을 위한 취미의 물건이 아니다. 생의(生意)가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을 영위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보편적 필수품이다. 인간의 생(生)을 영속시키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공예가의 목표이자 소명이다.

공예품은 인간의 삶 속에 늘 존재하기에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의미 없거나 하찮은 것으로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공예품은 삶의 현장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생리적 필요(physiological needs)를 충족시킨다. 따라서 공예가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삶의 필요와 불편함을 살피고 좀 더 편리하게 바꾸려는 세심한 관찰력과 진중한 고민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공예품이 온전히 인간의 생리적 필요를 충족시켰다 해서 훌륭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예는 근본적으로 ‘작업’이라는 행위를 근간하고 있으나 단순히 반복적 노동 혹은 능숙한 기술지식 만으로 작업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재료를 의미 있는 '쓸모'로 바꾸는 창의를 지니고 발휘할 줄 아는 호모 루덴스들, 그들이 '공예가'다.


공예가의 기술은 재료에 인간의 의도를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공예의 핵심 요소다. 공예가는 의도적으로 목적에 따라 자연의 재료에 형태를 부여하여 기능하는 사물을 만든다. 그러나 쓰임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예의 가치는 실용성(實用性)과 아름다움(美)의 조화로 평가된다. 공예를 자칫 훌륭한 기술로 물건을 만드는 행위 또는 물리적 사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좁게 이해하기 쉽지만, 공예는 재료, 기술, 지식, 과정뿐 아니라 공예품이 품고 있는 문화와 시대성을 모두 지칭하는 광의적 개념이다.

따라서 공예가는 단순한 사물 제작자가 아니다. 공예가는 손으로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 문화생산자인 동시에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사유하고 표현하는 삶의 철학자다. 삶을 자연과학적이고 논리적 방법에 의해 분석, 지각하는 과학자나 철학자와 달리 공예가는 인간의 생로병사의 삶의 순환과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험을 끊임없이 사유하여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실용적 사물로 제시한다. 결국 공예품에는 공예가의 삶에 대한 태도와 해석이 구체적 사물로 반영된다. 그것이 한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용자의 생각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예가에게는 상투적이고 무책임한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 공예품은 자연과 삶에 대한 자신만의 사고를 세우고 끊임없이 재기(才氣)와 상상력을 갈고 다듬은 자들이 오늘날 사람들이 사람답게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피고 헤아려야만 만들 수 있는 성찰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공예가들의 생각하는 손은 평범한 재료를 전에 없는 다른 존재로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다.



공예가를 단순히 노동하는 자로만 간주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공예가들이 일하는 방식이자 태도 때문이다. 공예가들의 일은 분명 생활과 직결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목적만을 우선하지는 않는다. 공예가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일에 목적을 둔다면, 비용이 저렴한 타자 혹은 기계의 노동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한 공력이 많이 요구되는 기법은 배제하고 다루기 어렵고 값비싼 재료는 쓰지 않으면 된다. 시간과 공력을 들여 몰두하지 않아도 물건은 만들 수 있으며 재화, 자본, 시간, 노동이 절약된 만큼 제작자가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배가될 것이다.

그러나 공예가의 목표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물건 그리고 가까이 두고 싶은 물건 나아가 자신이 만든 물건으로 사람들의 삶과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따라서 공예가의 일을 단순히 생계 수단이나 육체적 노동에 국한시키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공예가는 일 자체에 집중하고 그 일을 훌륭히 해냄으로써 유용한 물건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물건이 현실에서 제 기능을 다하는 것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자다. 이들은 세상의 인정과 세속적 현실을 넘어서 자신의 노동을 의무로부터 분리시키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는 창조적 놀이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호모 루덴스(Homo Rudens)들이라고 할 수 있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글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공예공방|공예가 되기까지>의 도록에 실렸던 필자의 기고문을 바탕으로 2022년 다시 작성하였습니다.

keyword
이전 02화시작하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