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_

우리 시대, 공예의 가치와 유용, 삶의 지혜를 다시 생각하다.

by 홍지수


한국 사회에서 공예라는 말은 친숙하지만, 공예가 가지고 있는 사회, 역사, 문화적 의미는 매우 복잡합니다. 전통, 근대와 구분도 없이 뒤엉켜 있다가 서구의 것을 흉내 내던 것이 이제야 우리 것, 현대에 어울리는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 사회 경제 이슈 등이 첨예해짐에 따라 공예의 방법과 태도로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공예가들도 예전 보다 친환경, 친 인간적인 공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서울공예박물관을 비롯해 우리나라 각지에 공예전문 국공․사립 미술관과 박물관등이 세워 졌습니다. 여러 젊은 작가, 기획자들을 중심으로 공예를 전시 기획과 담론의 주제로 삼아 현대공예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공예를 위시로 전시를 보고 작가들을 만나고 글을 써온 저는 최근 부쩍 높아진 공예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반갑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공기를 마시듯 늘 아름다운 것을 즐기고 사용하며 누리고 행복해질 문화적 토양도 한결 넓어지고 풍부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성숙하고 공예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공예가 단순히 ‘기능하는 사물' 혹은 '사치를 위한 사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예는 문화, 민족, 종교, 정치의 경계를 뛰어넘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초월하며 인간이 성취해온 가치와 지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주요 박물관의 주 컬렉션이 공예품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하고 오래 동반해왔기 때문에 공예는 필연적으로 전통과 면밀히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예는 너무 오랫동안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 혹은 현실과 시대정신이 결여된 옛 것으로만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공예는 언제나 그랬듯 정지된 과거의 양식 아닌, 인간의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특히 한국 공예는 공예를 전통으로 묶으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수용하며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자장(磁場) 속에서 탈장르, 혼성, 실험성을 추구하며 급격히 외연을 넓히는 중입니다. 특히 솜씨 좋은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활발해지면서 미술관, 화랑에서 눈에 띄게 공예라는 이름으로 볼 것이 많아졌습니다. 공예가들은 예술의 장에서 창작미술로 자신의 재기를 발산하기도 하고 시장의 영역에서 고급 상품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작업자의 사고와 상상력을 통해 발아하는 창작품이자 삶 속에서 사용되는 일상용품이기도 한 공예의 독특한 속성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대 공예가 정체성을 다시 쓰고 광활한 지평을 개척하는 동안 아쉽게도 오랫동안 공예의 존재론적 토대가 상실되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미친 가장 큰 문제는 공예의 궁극적 목표인 삶 또한 황폐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공예의 가치와 역할을 바로 세우고 공예의 진정한 회복을 묻는다면 해법의 시작은 결국 외부가 아닌 공예의 내부로부터 재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공예의 존재론적 토대는 삶의 유용성에 있습니다. 사실 공예의 가치와 유용(有用)이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의미가 그렇게 자명하고 명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예를 현대미술과 기계 생산품이라는 범주에서 독립시켜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논하려면, 논의 시작은 공예의 시작이자 끝, 바로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책에서 ‘공예가 사물'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요, 삶의 지혜이자 가치,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유용(有用之物)’이라는 점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공예를 이해하는 출발점을 고민한다면, 아무래도 공예의 기술적 측면,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손이 물건을 만드는 과정, 기교, 태도를 다시 들여다보고 경신하는 일이 먼저 일 겁니다. 연애를 시작하려해도 상대를 알아야 사랑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이 책의 1부는 ‘공예는 무엇인가?’ 나아가 ‘공예가는 누구이며, 어떻게 일하는가?’를 살피는 일을 먼저 보려합니다. 공예가는 자신이 지향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 도구, 기계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첫 시작을 공예가들이 목(木), 금(金), 토(土)의 재료를 어떻게 다루고 그 속에 자신의 정신과 기능을 형태와 합일시키며 아름다움과 유용으로 이끌어내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평소 물건을 누가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른 채 무심코 사용하기가 쉽습니다.

다음으로 공예가들이 작업실에서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 살펴봅니다. 그들이 작업실에서 어떤 재료, 도구, 기계를 어떤 마음과 방식을 다루며, 어떻게 일하는 지 들여다보는 것은 공예품의 아름다움과 그것에 담고자 했던 공예가들의 마음을 읽는 유효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공예가들은 단순히 기능하는 사물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의 마디마디에서 깨닫고 체득한 것들을 사물의 형태, 색, 질감, 기능으로 부여합니다.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주력을 다하는 공예가들의 작업과 태도에서 ‘공예’가 우리에게 무엇이고 무엇을 행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2부는 공예품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고 마음에 품어둘 만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살펴봅니다. 가끔 현장에서 사람들로부터 공예품을 보는 데 그림 보듯 철학적, 배경 설명이 필요하고 글까지 써야 하냐고 질문을 받습니다. 아마도 공예는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이기에 수사를 붙이거나 이론을 동원해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가 봅니다. 그러나 공예는 미술과는 다른 태생과 고유의 언어가 있습니다. 오히려 공예는 늘 우리가 눈을 돌려 볼 수 있는 곳에 가까이 있기에 우리는 막상 공예가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지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공예의 가치와 유용은 공예를 ‘기능하는 사물’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있는 미적 사물이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삶을 반영하는 친숙한 문화적 코드로 바라볼 때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공예가들이 만들어낸 가치와 유용,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지혜는 지금 우리가 고심하고 놓치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의미있는 열쇠를 내어줄 지도 모릅니다.


3부는 '공예의 사회적 실천 가능성과 활용'을 묻습니다. 사회적 산물이자 생산품인 공예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어떤 자양분을 공급해주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심해 보고자 합니다. 공예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소통을 전제로 하는 매체입니다. 공예가늘은 혼자 일하기 보다 같이 협력하여 일하는 방식으로 좋은 물건을 제작해왔습니다. 이는 공예가 시각 그리고 작가의 원본성을 우선하기보다 사용자의 편리와 안전을 우선하며 사회적 관습에 기반을 둔 역사적이고 이성적 개념에 통용되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예가 기초하는 삶의 유용성과 협력의 공생의 가치는 현대 사회에서 더 빛이 납니다.

지금은 더군다나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빛의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물질의 포화와 소비하지 않을 것을 생산하고 심지어 소비하지 않을 것을 구매하게 하는 시대입니다. 자본주의의 달콤한 유혹 속에서 느린, 때로 비효율적인 아날로그의 방법으로 아주 천천히 꼼꼼하게 만드는 공예가들의 물건에 주목해야 한다 이야기하는 것은 어딘가 시대착오적 혹은 복고적 취향으로 치부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계의 정교함과 새것의 휘황함보다 인간의 손때가 묻어난 사물이 주는 편안함을 우선하고 오래된 사물에서 인간의 체취(體臭)와 존재 이유를 확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제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공예 역시 아름다움이자 문화이기 이전에 무엇인가를 만드는 ‘생산’이자 '재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이 설 자리는 없는 시대입니다. 반드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 인간에게 유용한 최소한의 생산과 소비만이 허용되는 각성과 실천의 시대입니다. 발상, 재료, 가공법의 선택부터 유통, 폐기까지 공예는 공예다워야 합니다. ‘공예답다’는 것은 자연친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이어야 하며 공의적인 것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공예가들의 관심과 고민은 어떤 물건을 만들 것인가, 나의 재기를 어떻게 현실에 발휘할 것인가가 아니라 결국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진실함과 선함에 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타인과도 함께 하는 삶의 실천에 대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저 역시 공예가들이 만든 것들을 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사는 시간이 길수록, 그를 닮아 빼어난 공예가들의 솜씨와 따뜻한 배려를 가진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오랫동안 공들여 닦은 빼어난 솜씨로 만든 유려한, 유용지물을 보고 글을 쓰고 사니 그에 어울릴 멋진 사람이 되어야 자격이 있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이 책을 쓰는 과정은 결국 공예를 견본 삼아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자 수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좋은 공예품이 주는 가치와 유용, 아름다움을 독자들도 느끼고 공감을 이룬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공예적 실천입니다. 공예는 홀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솜씨, 재능, 아이디어를 타인과 나누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것들, 비싼 것들, 실체가 없는 것들은 아무리 외형이 멋지거나 화려해도 사람의 마음에 진실한 위안이나 힘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으로 내면을 채우려 하면 할수록 공허만 늘지요. 이 책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 주변 공예품들. 유달리 값 비싸고 진귀한 것은 아니어도 자신이 스스로를 위해 손수 만든 것이나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나를 생각하며 만들어주거나 물려준 것들. 그것이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한 것이 되어 되돌려 주는 이로움과 위안을 발견하고 누리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더불어 물질이 지배하고 디지털로 빠르게 장악하는 시대 속에서도 느린 사람의 공력과 의미 있는 소유만이 줄 수 있는 위로, 편안함을 '공예'에서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공예의 가치와 유용이 저 그리고 독자 여러분이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길 그리고 지금보다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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