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의 '재료'

차이와 다름을 개성으로 살리는 공예가의 창의와 솜씨 그리고 영감의 원천

by 홍지수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물건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일상용품일 수록 재질은 원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방법을 따르기 마련이다. 사물의 재질과 형태는 풍토, 재료, 기술,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공예품 제작에서 공예가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재료다. 공예 재료의 특질은 기후, 지형, 계절 같은 풍토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좋은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서 공예가는 재료의 산지, 특성, 용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는 것부터 배운다.

대부분 채집과 유목으로 식량을 얻었던 시대에는 계절과 지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재료를 취했다. 터전 주변에서 쉽게 보고 구할 수 있는 가죽과 나무, 흙이 주 재료였다. 북유럽이나 동유럽은 목재가 많았으며 아프리카 지역에는 가죽과 흙, 나무를 일찍부터 사용하였다. 유목 문명에서는 이동이 빈번했기에 이동에 편리하도록 가죽, 모피등을 이용해 간단히 만들거나 사용 뒤에는 버릴 수 있고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재료를 취했다. 이후 인간이 마을을 만들고 정착생활과 농경생활을 하게 되면서 공예의 재료와 형태, 종류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공예품은 다양한 재료와 수법으로 발전했지만 공예품의 목적이 생리적 필요에 기반을 둔다는 점 그리고 공예품의 형태가 자연물에 원형을 두고 있다는 점 나아가 공예가 실재적이고 물질적 재료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공예는 철저히 자연과 불과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공예품의 재료가 친인간적, 친자연적 형태를 따르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금속(金_Metal)


굳이 자연으로 나가 재료를 채집해올 필요가 없는 오늘날에도 공예가가 좋은 재료를 수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공예가의 일은 재료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원래의 형질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것이기에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은 모든 공예가들의 소망이자 우선하는 일이다. 공예가가 재료를 고른 후 해야 할 일은 재료가 지닌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목공예를 예를 들면, 같은 목재라도 계절과 산지에 따라 무른 정도가 달라 저마다 용도가 다르다. 재질이 가볍고 광택이 없는 오동나무는 표면을 인두로 지져 긁어내 단단한 나뭇결을 살리고(烙桐法) 얇은 판재로도 잘 터지지 않고 부드러운 감촉이 좋은 은행나무는 정교한 조각으로 목재의 성질을 장점화 한다. 추상적인 검은 묵 무늬가 특징인 먹감나무는 선비들의 사랑방 가구 제작에 제격이지만, 무늬가 강한 느티나무는 사용자의 정신과 안정된 분위기를 흐리게 한다 하여 선택치 않았던 것이 우리 옛 목가구 장인들의 재료 선택의 기준이었다. 이처럼 공예가는 자연의 재료를 대면한 순간 성질과 상태를 간파하여 재료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창조적으로 상상하고 그것을 물질적 실체로 구체화시킬 준비를 한다. 재료에 작업자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갖춰야 할 규모, 크기, 형태에 대한 결정을 온전히 재료의 속성에서 찾는 것은 모든 공예가들의 기본자세다.

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감추는 일이 언제나 수월하고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연의 재료는 인간의 의지 바깥에 있기에 공예가에게 매번 다른 태도와 적용을 요구한다. 동일(同一)과 균질(均質)이 특성인 인공재(人工材)와 달리 자연재는 차이와 다름이 본성이다. 결국 공예가가 재료의 차이와 다름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작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자칫 작업이 실패로 귀결될 때는 동일한 재료를 다시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 공예 제작의 근본적 속성이기에 자연의 재료를 다루는 공예가가 갖춰야 할 우선 덕목은 신중과 겸손이다. 아무리 능숙한 공예가라도 매번 재료를 다루는 데 신중해야 하고 행위의 결과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가늠하고 해결하는 일이 공정 내내 요구된다. 세월과 경험으로 단련된 검증된 기술이라도 공예가는 재료 앞에서 자신의 기량과 지식을 자신하거나 맹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신중하게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신중과 겸손이야말로 생의 존재로부터 이탈한 자연의 일부를 다시금 쓸모 있는 생활의 물건으로 새롭게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공예가의 덕목이다.



제료의 언어인 '물성'은 작가에 따라 이야기가 되고, 용도가 되고, 예술이 된다.



현대 공예가들이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며 재료와 기법을 수용하며 표현이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공예 가가 재료를 다듬고 형태를 만드는 수법의 기본적 속성은 목(木), 금(金), 토(土)의 성질을 지닌 다양한 재료를 물과 불(水火)을 동인삼아 가공하는 것이다. 자연재를 매체 삼는 모든 조형예술 창작이 마찬가지겠지만, 공예 작업이야말로 질료의 비인간적 속성과 싸워 재료를 완벽하게 다듬고 자유자재로 변형하여 형태를 얻는 극복의 과정이 중심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공예가는 재료에 기능과 아름다움을 불어넣어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사물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공예의 재료는 단순힌 무엇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성정으로 수용하고 한껏 매료된 재료의 언어 '물성'을 탐닉하고 들여다 보아 찾아낸 흥미로운 이야기다. 공예가들은 재료를 자기 언어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타인에게 무엇을 필요한지 묻는 사람들이다. 주변의 익숙한 재료에서 특별한 재미, 용도를 찾는 그들의 눈이야말로 공예 창작의 원천이요, 그들이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것을 공예품에서 발견하는 것도 공예의 즐거움이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기획자/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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