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시간과 온전한 시간

공예가들이 창작을 위해 보내는 두 개의 시간

by 홍지수



작가들이 작업실에서 보내는 '절대적 시간'의 다른 이름은 '고독'이고 '자기와의 싸움'이다.


작업실과 전시장에 가는 일을 일상으로 사는 나는 작가들과 ‘절대적 시간’과 ‘온전한 시간’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절대적 시간'이란 작가가 무엇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물질과 노동으로 채워야 하는 시간을 말한다. 작업내용과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개념을 추구하는 순수 미술 작가들보다 공예가들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긴 것 같다. 개념에 따라 타인에게 작업을 맡기거나 일상에서 가져올 수도 있는(발견된 오브제) 순수 예술가들과 달리 공예가들은 스스로 재료의 손질과 완성까지 다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작업 공정의 일부를 맡기는 것이 직성에 맞지 않거나 스스로 현실 공간에서 무엇을 만지고 두드리고 덜어내는 일이 작업의 미와 특징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아서다. 또한 작업 과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희열과 만족감이 공예가 스스로에게 삶의 동력이자 작업의 이유인 경우도 많고.






반면 ‘온전한 시간’은 반드시 작업실에서 재료를 만지고 형상을 만드는 노동의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특히 결혼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혹은 자신, 주변인의 병간호, 작업실의 부재 등등의 이유로 작가로서 활동의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더) 작업실에 가지 못하는 것,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작가에게 조심스레 ‘평상시 온전히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본다.

‘온전한 시간’은 작업실에서도,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자기 전 침대 위나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도 보낼 수 있다. 언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니 집, 작업실, 화장실 곳곳에 메모지와 필기구를 두는 조바심과 열의가 있는가? 작업할 시간이 기대되어서 이 밤이 얼른 지나 아침 해가 뜨길 고대한 적은? 작업실에 들어가는 마음이 연인을 만나는 것 마냥 설렌 적은 언제였나?


굳이 작업실이 아니어도, 그 어디에서나 '온전한 시간'은 가능하다.


하루 시간 중 한 남자 혹은 여자, 남편이나 아내, 아빠나 엄마여야 하는 일상의 시간을 최소화하되, 작가는 작가로서 보내야 할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절대적 시간과 온전한 시간으로 나뉘고 그 시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맞춰 충실히 살고 스스로 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작가의 삶을 산다면 ‘절대적 시간’을 확보한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작업실을 나왔다 하여도 최대한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발전하는 ‘온전한 시간’을 더해야 한다. 물론 작가가 ‘온전한 시간’을 보냈다 해서 작업해야 할 ‘절대적 시간’을 적게 보내는 것을 마냥 이해할 수는 없다. 공예가들의 작업은 극히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기반 위에 성립되는 정신활동이자 노동이기에 그러하다. 공예가에게 ‘온전한 시간’과 ‘절대적 시간'은 그들이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사물을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나 만약 절대적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작업은 평생 하는 것이고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은 공백이 있을지라도 공백은 공백대로 채움은 채움대로 고스란히 나를 기록한다. 작업할 여건이 안 돼 ‘온전한 시간’만으로 수년간을 채웠어도 그 시간을 누구보다 충실하고 온전하게 보냈기에 다시 되찾은 절대적 시간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충만한 사유,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업들을 나는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이처럼 작가들과 ‘절대적 시간’과 ‘온전한 시간’의 필요와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공예 현장에서 글을 쓰며 사는 나 스스로에게도 매일 건네는 질문이다.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아도, 항상 그들과 같은 운명을 살고 같이 걷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고는 2022년 월간 도예 1월호에 실린 공예 칼럼 '소소 담화' 첫 번째 글입니다.

'소소 담화'는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공예 현장을 다니며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바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keyword
이전 08화공예가의 '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