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들의 일은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몸에 밴 익숙한 습관과도 같은 것
나는 작업이란 감응이 최고조에 달하고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지는 날에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매일 배고픈 시간에 밥을 먹고 뱃속에서 신호가 오면 필히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 같은 '일상다반사'라던 老작가의 말을 제일 좋아한다.
오늘은 기분이 나빠서 종 치고
컨디션이 저조해서 오늘 종 치고
날씨가 꾸릿꾸릿해서 오늘 종 치고
작품 망쳐 오늘 종 치고
재료 떨어져, 기계 망가져 오늘 종 치고
친구들 작업실 놀러 와서 오늘 종 치고
어제 술 마셔서 가시지 않는 숙취에 오늘 종 치고
기분 좋아 오늘 종 치면.
종 치고... 종 치면...
'도대체 일 년 작업할 수 있는 날 몇 날이나 되냐?'라고 묻던 날 선 되물음이 나는 내게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던지는 외침이자 다짐 같았다.
말이 그렇지. 일정량의 노동, 작업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다반사가 되려면 보통 자기 단련과 정신이 필요한 게 아닐 게다. 그게 한 해, 두 해 쌓여 수 십 년 사는 일은 몸에 인처럼 배기지 않고서야 그리고 어지간한 신념과 자부심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일 일 것이고. 그것은 작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다.
공예가들의 작업장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재료의 시간, 공정의 시간에 따라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매일 해야할 일, 나를 기다리는 재료와 공정이 있다. 공예가가 흥취나 감응이 동할 때만 작업한다면, 재료가 기다려줄까 아님 시간이 기다려줄까. 애써 해 놓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태와 무지의 경험으로 그것을 익히 아는 공예가일수록 매일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고 계획을 세워 작업장에 들어간다. 나태보다는 부지런함을, 성실함을 몸에 무기로 달고 그것을 당연하 여기는 자들로 바뀌어 간다. 그들이 선택한 재료가 그리고 공정이 그들을 작업에 특화된 이로 바꾼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계절의 순환과 바뀜, 식물의 생장 속도에 따라 자신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공예는 재료의 시간에 맞춰 자신의 신체리듬과 의욕을 맞춰놓고 살아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선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는 자연의 생리가 농부의 일뿐 아니라, 공예가들의 일에도 담겨 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만사는 일맥상통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제법 늦은 이 시간, 나 역시 나의 일상다반사를 위해 서재에 들어간다. ■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