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옹이를 품고 뒤틀렸을 지라도, 무늬가 훌륭하지 않아도 목공예가의 손은 그것을 '유용한 물건'으로 만든다.
살다 보면 가끔씩 ‘나는 왜 이리 쓸모가 없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신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만들었을 때에는 존재의 이유, 해야 할 역할이 있었을 텐데.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고 찾지 못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해지고 무력해했다. 나이 스물이 되면, 서른이 넘으면, 그리고 조금씩 더 나이를 먹으면 스스로 쓸모를 찾고 한없이 나의 존재가 작게 느껴지는 무력한 날들도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어떤 깨달음이나 해답도 찾을 수 없다.
공예가들은 지구 상 존재하는 여러 물질 가운데 목금토(木金土)의 성질을 지닌 재료를 자신의 취향과 목적에 맞춰 공예 소재로 취하고 수(水)화(火)를 동력 삼아 가공하여 사물을 만든다. 과거와 달리 현대 공예가들의 재료는 매우 다종 다양한데 같은 재료라도 작가가 어찌 여기고 대하는 지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예를 들면, 목(木) 기질을 재료 삼는 목공예가라도 가구를 만드는 자와 목기(木器)를 만드는 자의 수종(樹種)은 다르다. 같은 은(銀)이라도 귀금속을 만드는 자와 기물을 만드는 자의 도구와 작업방식, 나아가 그들이 각자 머무는 작업장 풍경과 몸마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재료를 대하는 공예가의 목적과 미적 취향이 재료에 다른 운명, 또 다른 생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타 다른 공예 분야라고 다르지 않다. 물론 재료를 물과 불로 가공하는 일은 단연 공예가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공예가가 물질을 고르고 그것을 자신의 몸과 연장으로 응대하며 취급하는 태도, 노동 방식과 목적은 분명 타 분야 예술가들의 것과는 다르다.
공예가가 재료와 기법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은 ‘타자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다. 공예가의 일은 언제나 먼저 고려해야 할 상대가 있다. 공예의 일은 일방적이지 않기에 공예가는 자신의 미적 취향이나 조형 목표보다 타자의 필요, 재료의 상태와 성질을 우선해 일한다. 공예가들은 과거 자연재를 주로 사용했지만,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전에 보지 못했던 색다른 재료와 도구, 방법이 많아졌다. 그것이 옛 것이든, 새것이든 간에 자신의 안목과 재기를 동원해 재료를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유용한 것으로 바꾸는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모든 재료가 공예가가 원하는 최상의 상태, 무늬, 색, 강도 등이면 좋겠으나, 계절과 기후, 산지의 환경, 재료의 수급, 법령 등등의 조건에 따라 작가가 원하고 값을 치르고자 해도 소유하거나 상태를 선별할 수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공재보다 자연재일수록 작업자의 마음에 쏙 드는 완전무결한 상태의 것을 취하기 어렵다. 있다 해도 창작자가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필요한 양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또한 요즘 작업공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가 사회적 이슈와 공생의 해결과제로 대두되는 만큼, 새로운 혹은 양질의 재료를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작업 과정 중 남고 버려지는 재료를 새로운 생명과 활용 방도를 부여하는 것도 공예가의 재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처럼 공예가는 부득이 최선보다 최대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충족할 차선을 취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재료와 기술, 자본의 부족한 것을 감추고 장점과 가능성은 키워 재료가 비로소 유용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일. 그것을 위해 적합한 소재, 형태, 용도, 가공 방법 등을 찾아야 한다. 공예가들은 타협과 절충, 고민과 모색의 순간이 일순간 해일처럼 덮치고 해결하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한다. 이것이 공예가의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다.
위기의 다른 이름은 기회다. 재료를 가치 있는 사물로 만드는 데 반드시 화려하고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예가가 작은 솜씨와 아이디어를 더하자 문제가 풀리고 오히려 재료가 가지고 있는 흠결과 부족이 아름다움,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로 바뀌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불완전함, 흠결, 모자람을 아름다움으로 바꾼 공예가들의 솜씨와 안목을 볼 때마다 나의 하찮음과 부족함을 다시 들춰본다. 어떻게 바꾸고 메워야 나는 좀 더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될까. 그런 안목과 솜씨는 어디서 어떻게 기르고 가질 수 있을까 되뇌면서 말이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고는 2022년 월간 도예 2월호에 실린 공예 칼럼 '소소 담화' 두 번째 글입니다.
'소소 담화'는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공예 현장을 다니며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바를 독자들과 나눕니다.